“美 핵확산 저지선 곳곳서 뚫렸다”… 英 가디언, 위키리크스 인용 보도
입력 2010-12-20 18:38
영화 ‘스파이더맨2’(2004년 개봉)에선 연구실의 핵융합 사고로 옥토퍼스라는 괴물이 탄생한다. ‘007언리미티드’(1999년)에서는 러시아 석유재벌이 옛 소련의 핵무기를 가로챈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0일 인터넷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電文·cable)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미 뚫린 핵물질 ‘1차 저지선’=지난해 10월 21일 조지아(그루지야) 주재 미국 대사관은 핵물질 유출사고를 보고했다. 아르메니아 인접 국경 검문소에서 아르메니아로 돌아가던 차량을 검색한 결과 강력한 방사능 반응이 나왔다. 방사능의 정체는 세슘-137. 조잡한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위험물질이다. 이 차량은 조지아로 돌아올 때도 방사능이 검출됐지만 무사히 통과됐고 세슘-137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미 대사관은 “차에 실려 있었던 물건은 이미 배달이 끝난 상태였다”고 보고했다.
가디언은 미국 외교관들이 전 세계에서 테러집단의 핵 공격이라는 악몽을 막기 위해 핵물질이라는 ‘지니’(천일야화에 등장하는 램프 속 요정)를 램프 속에 가두려고 노력하지만, 유출을 막는 1차 저지선은 이미 뚫렸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된 핵물질 분실사고가 500건인데 대부분 옛 소련과 동유럽에서 벌어졌다”면서 “소련 붕괴 이후 군인들이 ‘노후 대책’으로 핵물질을 빼내 반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7월 25일 당시 포르투갈 주재 미국 대사 토머스 스티븐슨은 옛 소련 퇴역군인이 리스본에서 우라늄을 판매하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국무부에 보고했다. 제보자가 제시한 사진 속엔 체르노빌에서 빼낸 것으로 보이는 상자 모양의 물질이 있었고, 무게는 25㎏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티븐슨 대사는 “제보자는 말끔한 복장에 영어도 능통했으며 금전적 대가를 요구했다”고 보고했다.
◇계속되는 핵물질 유출 및 거래=세계 최대의 우라늄 광산이 있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선 핵물질 사고가 빈발했다. 민주콩고에선 1960년대 모부투 세세세코가 집권한 이후 연구용 원자로에 쓰이던 핵연료봉 2개가 분실됐다. 하나는 98년 이탈리아 마피아가 중동 지역에 팔려다 적발됐다. 다른 하나는 아직도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6년 9월 작성된 외교전문은 민주콩고의 수도 킨샤사에 위치한 핵연구센터의 벽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감시카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바로 옆 킨샤사대학 학생들이 자유롭게 핵연구센터를 드나들고 있었고, 핵폐기물처리장 바로 옆에선 농부가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민주콩고와 맞붙은 부룬디에선 2007년 6월 한 원로가 “옛 벨기에 식민지 건물에 핵물질이 숨겨져 있다”고 제보한 사실이 보고됐다.
가디언은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핵물질의 불법 거래를 막는 2차 저지선에도 큰 구멍이 뚫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