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남해를 지키는 이순신 나무
입력 2010-12-20 17:43
서울의 중심을 지키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40일의 병가(病暇)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올 채비를 마쳤다. 서울의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국토의 남쪽 바다를 지켜온 ‘이순신 나무’도 있다. 경남 남해도 인근 작은 섬 창선도의 대벽리 단항마을 바닷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다. 단항마을은 통영 한산도에서부터 여수에 이르는 한려수도의 중간쯤으로, 이순신 장군이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곳이다.
용왕이 보낸 씨앗에서 싹을 틔웠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창선도 후박나무는 키가 8m밖에 안 되지만 나뭇가지는 동서로 21.2m, 남북으로 18.3m에 이를 정도로 넓게 퍼졌다. 웅장한 규모의 이 나무는 500년을 살아온 것으로 추측되는 노거수다.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연륜은 푸른 이끼가 잔뜩 얹혀진 줄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가운데 가장 굵은 줄기는 오래전에 부러졌는데, 그 자리에는 나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려 애쓴 흔적이 울퉁불퉁한 혹으로 남았다. 가운데가 비었지만, 11개로 갈라지며 우렁차게 솟아오른 다른 굵은 줄기의 모습은 나무에 웅장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 밑둥치 부분의 둘레는 무려 11m에 이른다.
‘이순신 나무’라는 위풍당당한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정유재란(1597)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 때 이 마을에서 벌인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기습 공격으로 배 400척을 잃고 퇴각하던 왜군은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잠시 단항마을에 잠복하던 이순신 장군은 마을 주위에 무성하게 숲을 이룬 대나무를 이용해 왜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장군은 작은 배에 대나무를 가득 쌓고 불을 질렀다. 불이 붙자 대나무는 마디가 터지면서 마치 대포를 쏘는 듯한 큰 소리를 냈다. 이순신 함대의 동정을 엿보던 왜군은 끝없이 이어지는 포성에 주눅이 들어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장군의 지혜 덕분에 병사들은 전열을 정비하고 소진했던 전투력을 충전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장군이 병사들과 함께 쉬었던 자리가 이 후박나무 그늘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그늘로 푸짐한 먹을거리를 내놓으며 장군을 성원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후박나무에는 ‘이순신 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다. 용왕의 전설보다 이순신 장군의 신화를 더 귀하게 여긴 건 당연한 일이다.
더불어 나무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도운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남았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