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제대군인에게 보로금 500만원을!
입력 2010-12-20 17:40
한반도에 전운이 자욱하니, 제복의 집단이 다시 주목받는다. 우리의 60만 현역과 300만 예비군이 전선을 맡을 주력군이다.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사람들인가.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아직 어정쩡하다. 예비군의 존재감은 더욱 미약하다. 기껏 떠오르는 것이 그들의 일탈행위다. 아무데서나 드러눕고, 침을 막 뱉고, 길에서 소변을 보다가 지나가는 여자 희롱하고.
심리학자들은 이를 제복의 익명성으로 설명한다. 집단의 이름 아래 숨어 억눌러 왔던 본능을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통제력 상실 이후의 책임이 분산되는 이유도 있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해병대 출신은 노인이 돼서도 제복을 입는 것이나, 촛불집회 때의 예비군복은 의미가 다르다. 국제스포츠 경기 때의 국가별 유니폼은 오히려 경건한 행동을 유도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긍지론이다. 군대생활에 프라이드가 없기 때문이란다. 예비군은 민간인이면서 제복을 입는 이 모순된 신분에 저항한다. 그들의 빗나간 행동은 자괴감 가득한 과거에 대한 질책이자 자기학대라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그런 것 같다.
“자긍심 없이 士氣 없다”
우리나라에서 제복의 자긍심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고, 남들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정부 고위직의 인사청문회 이후 많이 달라졌지만, 한동안 현역 군인은 못난이 집단이었다. 신체검사 과정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우매한 장정들만 훈련소에 모여 들었다. 그러고는 고된 훈련과 엄격한 기율 속에서 2년여를 썩는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손실이다. 신체의 자유나 기회비용을 떠나 당장 돈으로 따져도 그렇다. 사병 월급이 7만∼9만원 되니 일당 3000원에도 못 미친다. 국방의무라는 이름 아래 병사들의 일방적인 헌신 혹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 시간에 사회에 남은 친구는 적어도 월 100만원을 번다. 그것이 2년이면 2000만원의 차이를 낸다. 요즘 젊은이는 그걸 계산한다.
제대하면 어떤가. 개구리복 입고 후임들 전송 받으며 기세 좋게 나왔지만 그날로 빈손이다. 대학을 그만둔 사람이 복학하려면 알바 전선을 뛰어야 한다. 고졸자는 당장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한다. 나이 먹은 제대 군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역 혹은 직장예비군으로 편입돼 동원훈련을 받을 때도 몸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 군의 사기가 결정된다. 군대에 있을 때나, 전역해서나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의 객기나 예비군들의 일탈도 거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제대군인들에게 500만원을 주자고! 매달 20만원을 적립했다가 주자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제대로 마친 사람들에게 보로금 형식으로 지급하면 된다. 고생한 젊은이에게 주는 국민의 꽃다발이다.
그 돈이면 대학 다니다 입대한 사람에게는 한 학기 등록금이 된다.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취업준비금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소요예산을 굳이 계산하지 않으려 한다. 국방비가 늘어난다고? 군인의 사기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그들이 지키는 땅과 바다와 하늘은 셈할 수도 없다.
등록금·취업준비금 활용토록
그래도 굳이 따진다면 국방비 외에 교육부와 고용부 예산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본다. 제대군인에게 지급하는 돈은 교육예산이자 고용보조금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예비군들에게도 합당한 훈련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2020년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그게 철모를 다시 씌우는 국가의 예의다.
올해만큼 군 문제가 뜨거웠던 적이 없다. 지금 군대로는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도 한다. 해병대 지원율도 높아졌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국군으로서 뿌듯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군의 기백이 살아나고, 국민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으며, 나라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서해에서 보고 또 보았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