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아버지

입력 2010-12-20 18:17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 때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두 모시고 오라는 통지문을 내셨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어르신 손잡고 함께 달리기 순서가 있었다. 출발선에서 10m쯤 달려가 그릇에 담겨 있는 쪽지를 뽑으면 ‘면장님 손잡고 달려라’ ‘이장님 손잡고 달려라’ ‘교장선생님…’ ‘어머니…’ ‘여선생님…’ 등이 쓰여 있다. 나는 ‘아버지 손잡고 달려라’는 쪽지를 뽑았다. 그때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과 지병으로 외부 출입을 거의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어차피 6년 동안 한번도 운동회에 오신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실격당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제자리로 돌아올 때 유난히 마음이 아팠다.

12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20세에 예수 믿고 성령님이 내게 주님을 알게 했고(고전 12:3)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롬 8:15). 육신의 아버지는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거의 평생 곁에 안 계셨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언제나 함께 계셨다. 육신의 아버지가 없는 내게 하나님 아버지는 누구보다 특별하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