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는 무엇인가

입력 2010-12-20 18:48


(24) 성서속 교회이미지

성서의 위대하고 독특한 점은 그것이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구약성서는 이미지들의 거대한 금고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많이 쓰셨다. 진리를 전달함에 그 이상의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성서는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선민 이스라엘의 계승자라는 뜻이다. 이사야서에 그런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부르셨다. 종으로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다. 이방의 빛을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이 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고발이요 탄식이다. 여호와의 증인이라 수없이 반복해 말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신 종과 증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정확히 말한 것이 히브리서(8:10)다. 곧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 곧 종과 증인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런 사명을 이스라엘이 맡았던 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교회 이미지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양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한자에도 무리 군(群)자에는 양(羊)자가 들어 있다. 양떼들은 함께 모여 살게 되어 있다. 여기선 교회의 공동체성, 그 얽힌 친근한 관계가 언급되고 있다. 또 양들은 방향감각이 없고 시력이 약해서 혼자서는 못 다닌다. 꼭 목자들이 인도하고 다녀야 한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우리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시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다. 우리 양떼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따르고, 그 목자는 우리들을 아시는 것이다. 여기서는 목자와 양떼들과의 끊을 수 없는 관계, 곧 우리 주 예수님과 우리들과의 밀접한 관계가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또 양떼들이 저 혼자서는 풀밭에 갈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들 스스로는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쫓아가야만 방초동산 먹이가 많이 있는 초장에 갈 수 있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되는 것이다.

양들은 또 놀랄 정도로 온순하다. 칼을 들고 털을 깎아도 하라는 대로 한다. 아무 반항도 하지 않는다. 구약시대를 보면 제단 위에 놓고 칼을 들고 피를 흘리게 하여도 묵묵히 당하고 있는 것이 양이다. 이것은 교회가 양순하고 주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며 어떤 일을 당하든지 참고 기다린다는 뜻이 될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