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훈련 긴장고조] 주민들 “육지와 섬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고 싫다”

입력 2010-12-19 18:38


“큰아들이 무섭다며 자꾸 나가자고 해서 어쩔 수가 없네요.”

19일 오후 연평도 당섬 외항선착장에서 만난 박미경(42·여)씨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이 짙게 묻어났다. 박씨는 아들 송주원(7)·주찬(4)군을 데리고 인천으로 가기 위해 선착장에 대기 중이던 여객선 코리아나호에 서둘러 올랐다. 박씨는 지난 7일 연평도로 돌아왔지만 군의 사격훈련이 예고되면서 다시 섬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했다. 북한이 지난 18일 사격훈련 강행 시 ‘예상할 수 없는 타격’을 가하겠다는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섬에 남아 있으려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불안해하니 남아있을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고된 우리 군의 사격훈련이 하루 이틀 늦어지면서 연평도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또다시 피난길에 오르는 주민들의 수도 늘어나 17∼19일 연평도에 입도한 주민은 39명이었지만 섬을 떠난 인원은 55명이나 됐다. 박씨의 남편이지만 섬에 남기로 한 송중섭(45) 연평교회 목사는 “연평도에 체류 중인 성도들이 크게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북한이 다시 도발할 수 있다’며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오후 인천으로 피신한 강영옥(70) 할머니는 연평도를 떠나기 전 “북한이 위협한다고 해서 우리가 사격훈련을 아예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도 “훈련 때문에 육지와 섬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고 싫다”고 말했다.

연평면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섬에 체류 중인 주민은 180여명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화를 나눠 보면 하나같이 두려움을 표시했다.

고영자(54·여)씨는 “연평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지만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다시 섬을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되물었다.

연평도에서는 중무장을 하고 순찰을 도는 군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군 관계자는 “혹시 모를 도발에 대비해 방호 진지를 정비하고 있다”며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K-9를 포함한 모든 화기가 즉각 대응 사격할 수 있게 준비해 놨다”고 했다.

한편 전날 오후 섬을 찾아 북한 체제를 규탄하는 행사를 벌이려는 보수단체 회원과 연평도 주민 사이에서는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북한의 김정일·정은 부자를 규탄하는 내용의 대북선전물 20만장을 대형 풍선에 태워 보내려는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과 말싸움을 벌인 박모(54)씨는 “이렇게 (북한을 자극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게 맞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평도=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