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혼합판매’ 또 실패… 당근도 채찍도 안먹히는 ‘기름값’

입력 2010-12-20 00:53


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오히려 기름값은 오르고 있다. 1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주 전국 주유소 무연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1767.6원이었다. 2008년 8월 둘째 주(1806.66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변죽만 울리는 대책이 아닌 근본적인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잇단 카드, 현장에선 싸늘=지난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특정 정유사의 상표(폴)를 달고 있더라도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함께 팔 수 있도록 모범거래 기준을 발표했다. 이 같은 혼합판매 허용은 2009년 도입됐지만 시장의 반응이 없자 거래기준을 새로 만들어 재차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한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했다. 여러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 받으려면 정유사 간 기름이 섞이지 않도록 정유사 숫자만큼 탱크를 설치해야 하는데 추가 탱크를 설치할 여력이 있는 주유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정유사와 맺어온 관계를 쉽게 깰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서울 서초동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서모씨는 “주유소들이 브랜드 간판 달고 어찌 다른 회사 기름을 쓸 수 있겠느냐”며 “공무원들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도 “공정위가 한물 간 대책을 다시 내놓았다”며 “일각에선 ‘올해 정유업계 실적이 좋으니 가격을 인하하라’는 압력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입점시키고 경쟁 활성화를 통해 기름값을 내리겠다는 지식경제부의 대책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에 주유소까지 입점하면 골목상권이 완전히 죽는다는 영세업자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지경부는 최근 관련 시행령을 수정, 서울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자체에서 일선 주유소와 마트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을 둘 수 있도록 했다. 대도시 외의 지역에서 사실상 주유소의 마트 입점을 금지한 셈이다.

◇근본적인 접근 필요=업계와 전문가들은 기름 가격에 정부의 노력 등 국내 요인이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공정위 조치가 나온 6일 이후 2주 동안 주유소 휘발유값은 ℓ당 40원 가까이 올랐고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다. 이는 달러 가치 하락 이후 원유에 투기자금이 유입된 데다 중국의 경유대란으로 인한 휘발유값 동반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통상적인 기름값 등락 역시 환율과 국제유가 변수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

또 전체 기름값 가운데 비용과 마진이 3%인 데 반해 세금은 52%다. 비용과 마진을 줄이는 정책을 아무리 써 봐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유업계에선 “내수 판매 물량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업체는 없다고 봐도 된다”며 “수익은 다 수출에서 얻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정부가 2~3년 동안 내놓은 대책 중 가격 정보 인터넷 공개 정도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뿐 효과를 낸 대책은 전무하다.

때문에 정책목표를 가격 인하에서 수요 억제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름값 인하는 석유 소비를 늘려 결국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흐름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장기적으로 전기차 도입으로 인한 유류세 감소 등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유가 부담이 큰 서민층을 위해선 석유구매권, 세금 환급 등으로 직접 지원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