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위키리크스 대처법

입력 2010-12-19 19:01

특종은 기자에게 짜릿한 경험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을 때, 기자들은 63빌딩에 올라가 신문을 뿌리고 싶다.

정말 큰 특종은 거센 반발을 불러오기도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나오라거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은 그나마 양반. 밤길 조심하라는 위협을 받을 때도 있다.

이럴 때 기자들은 기사를 제대로 썼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원칙. 하지만 현실에선 욕부터 나오는 게 인지상정. 반론과 협박은 기자들을 더 자극한다. 막무가내식 협박에 굴복하기보단 자신의 기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라 생각하고 싶은 기자들이 더 많다. 이럴 땐 협박이 거셀수록 자기 확신은 더 강해진다.

사실은 무시당하는 것보단 논란이 차라리 낫다. 기자 혼자 역사를 바꿀 것처럼 흥분해서 보도를 했는데 세상은 조용할 때, 솔직히 허탈하다.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의 기밀 25만여건을 폭로하고 있다. 반발이 거세다 못해 거칠다. 위키리크스의 인터넷 주소는 삭제됐다. 서버컴퓨터를 빌려준 아마존닷컴은 전원을 꺼버렸다.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은 후원금 결제를 거부했다. 제3세계 독재자의 금고 역할을 해온 스위스 은행들마저 위키리크스 계좌는 동결해버렸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위키리크스가 큰 특종을 터뜨렸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위키리크스가 스스로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 최대의 폭로”라고 ‘자뻑’할 만도 하다.

막상 지금까지 폭로된 내용은 사실 별 것 없다. 대부분 정치 지도자와 상대 국가에 대한 뒷소문과 험담, 억측을 외교관들이 수집해 보고한 것이다. 현지 언론 보도나 정보원의 잡담을 정리한 ‘카더라 통신’ 수준이다. 노아의 방주에 비유하자면 “홍수가 일어나 세상이 물에 잠길 것”이란 내용보단 “노아라는 미친 노인네가 산꼭대기에 배를 만든다”고 흉보는 수준이랄까.

그런데 미국은 왜 이렇게 거칠게 반발하는 것일까. 특종도 아닌 것 같은데 반발이 거세다면 뭔가 수상하다. 중요한 일이 공개됐는데 아직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외교관들의 보고가 이렇게 시답잖은 내용뿐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비밀이었던 것은 아닐까. 혹 이런 소문과 잡담이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왔다는 비밀을 위키리크스가 폭로해버린 것은 아닐까. 억측이라고? 그렇다면 논란과 협박으로 대응하기보단 차라리 무시해버리는 게 낫다. 그럼 허탈해서 그만둘지도 모른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