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서승환] 무상급식과 메커니즘 설계

입력 2010-12-19 18:59


소위 친환경 무상급식을 두고 서울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점입가경이다. 서울시 의회는 지난 1일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켜 무상급식에 드는 비용의 일부를 서울시 예산에 반영시키도록 했다. 서울시장은 시의회가 시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시의회와의 협의를 거부했고 시의회는 예산심의를 볼모로 잡아 서울시 예산안이 처리시한을 넘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주부터 예산안 심의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갈등은 점차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민망한 상황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의 후보들이 재미를 좀 본 무상급식을 실제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이미 예견된 것이다.

무상급식과 연관된 논란의 중심에 보편적 복지가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복지의 혜택을 주자는 것으로서 필요한 계층에게만 선택적으로 복지의 혜택을 주자는 선별적 복지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지는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고 모든 사람의 사상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서는 사상의 자유와는 무관한 너무도 많은 지적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서울시 의회는 서울시가 당장 내년부터 예산에 700억원 정도를 계상해야 할 조례를 서울시와 충분히 협의도 하지 않고 전광석화처럼 통과시켰다. 다수결로 통과시켜 적법하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4대강 사업 등에 대해서도 입을 다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첨예하게 의견이 갈려 있는 사안일수록 시간을 갖고 충분히 협의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책 수반에 소용되는 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길임을 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주장과 연관된 논의의 적절성 여부도 지적할 수 있다. 서울시 연간 예산의 0.3%밖에 안 되는 700억원 정도로 아이들 공짜 점심 좀 주자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주장은 진실과 다를 수 있다. 경제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원리 중의 하나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700억원을 무상급식에 쓰면 다른 곳에 쓸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이 다른 일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700억원이 서울시 예산규모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 왜 못해 주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 무상급식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일을 덜 중요하다고 폄하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해 보았더니 85% 정도에 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니 무상급식을 할 정당성이 확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공짜면 소도 잡아먹는데도 불구하고 15%나 반대의견이 나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100만원씩 주겠다는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찬성률이 얼마나 될까. 압도적인 찬성률이 나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로 낙인효과를 든다. 다른 아이들은 돈을 내고 사먹는데 자기는 공짜로 먹는 것을 친구들이 보면 어린 가슴에 얼마나 멍이 들겠냐는 것이다. 중요한 고려사항이지만 낙인효과 때문에 모두에게 공짜로 점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급식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낙인효과를 제거하는 문제는 메커니즘 설계의 문제이다. 급식과정에서 모든 아이들이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법에 무상급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싸게 낙인효과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접근방법일 것이다.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