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 1일 체험 현장 리포트

입력 2010-12-19 19:18


[미션라이프]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딸랑 딸랑∼.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겨울 추위가 일시 누그러진 18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우리은행 본점 앞.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 일일체험에 나선 기자는 사관생도 및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쉬운 일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거리지만 자선냄비로 향하는 이는 좀처럼 없었다. 억지로 붙들 수도 없고, 조금씩 애가 타기 시작했다. 가끔씩 눈을 마주치는 이들도 있지만 애써 외면하기 바빴다.

족히 10여분은 지났을까. 중절모를 쓴 한 노인이 성큼성큼 자선냄비를 향해 다가왔다. 잠깐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던 그는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얼른 자선냄비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역시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나 보다. 한 번 ‘개시’가 되자 자선냄비로 향하는 발길이 줄을 이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동전을 집어넣는 아이부터 헤드폰을 낀 외국인, 손을 맞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까지. 뇌성마비 장애인이 힘겨운 걸음을 옮겨와 만원짜리 한 장을 넣었다.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가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몇 장을 넣었다. 절로 콧날이 시큰했다.

한 50대 남성은 자선냄비에 돈을 넣은 뒤 봉사들에게 “사람들에게 ‘그냥 가지 마세요’라고 외쳐 보라”고 주문했다. 사관생도들은 “모금을 하다보면 재밌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금은 천원짜리와 만원짜리가 주종이다. 가끔 5만원짜리나 10만원권 수표를 넣는 ‘통 큰’ 이를 볼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인터뷰라도 할라치면 모두 거절했다. 드러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리가 제법 묵직해질 무렵 교대조가 나타났다. 한 시간 일하고 한 시간 쉬는 2교대 방식이다. 쉬는 시간에 각자 알아서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 배가 고프면 인근 음식점에서 사 먹으면 되고, 목이 아프면 구세군 버스에 들어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 된다.

“몸이나 녹이자”며 한 사관생도가 인근 대로변에 세워진 구세군 버스로 안내했다. 1시간씩 모금을 하고 온 사관생도와 자원봉사자들이 몸을 녹이면서 쉬고 있었다. ‘모금 경험담’을 쏟아 놓는 이도 있었다.

“명동은 자선냄비가 처음 걸린 곳이에요. 역사가 길다보니 단골들이 많지요. 매년 적금을 부어 내거나, 아이들이 저금통을 통째로 갖고 오는 경우도 있고요.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와 돈을 내는 분도 있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돈에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이 추운 계절에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일종의 정신운동이지요. 남을 도우며 생색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선냄비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기독교적 실천이기도 하고요.”

다시 일자리로 돌아왔다. 어느새 어둠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선의 발길이 늘어났다. 한 사관생도는 “대개 낮보다 밤이 되면 성금이 내는 이들이 더 늘어난다”고 귀띔해줬다.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휘황해질 때, 조지혜(22·회사원)·지숙(20·가천의과학대1) 자매가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뭔가 보람 있는 일이 하고 싶어 봉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성금을 내는 시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꾸벅 꾸벅 인사하는 자매가 너무 예뻐 보였다.

“교회에 다니며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쯤 이런 봉사활동에 참여할 겁니다. 몸은 힘들지만 기분이 좋네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활동은 전국 76개 지역 300곳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달 동안 계속된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사관생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김윤택(35) 생도는 “공동모금회의 비리 여파로 초반엔 모금 참여율이 다소 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점점 모금액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동모금회의 일이 어느 정도 흘렀고 연평도 사태 등 사회에 큰 일이 발생해 시민들의 온정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8시, 모금 활동이 모두 끝났다. 몸이 다소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김 생도는 “고생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하며 손을 잡아줬다. “이런 좋은 기회를 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답례인사를 했다. 자연스레 서로를 껴안았다. 참으로 마음 뿌듯한 하루였다.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활동 신청은 전화(02-6364-4070)로 하면 된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