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태형] 너는 한번이나 ‘동사’였는가

입력 2010-12-17 17:44

“나의 본질은 동사죠. 나는 명사보다 동사에 맞춰져 있어요. 고백하기, 회개하기, 살기, 반응하기, 성장하기, 도약하기, 변화하기, 씨뿌리기, 달리기, 춤추기, 노래하기 등의 동사죠. 그런데 인간들에겐 은총이 가득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동사를 죽은 명사나 썩은 냄새가 나는 원칙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어요. (중략) 우주가 명사 덩어리라면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동사도 사라져요. 동사야말로 이 우주를 살아있게 만드니까요. 나는 동사예요. 스스로 존재하는 자예요. 미래에도 마찬가지죠. 나는 동사예요! 나는 살아있고 역동적이며 늘 활동적이고 또 움직이죠. 나는 지금도 동사예요.”(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한 지난 15일 기자들과 함께 서울 답십리 밥퍼나눔운동본부를 방문했다. 8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 끼 밥을 먹기 위해서 추위와 싸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끼 밥을 드리기 위해서 찾아왔다. 입구 현판에는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을 때까지’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바깥의 큰 고무통 속에는 얼어붙은 고등어가 보였다. 차디찬 고등어는 강제로 해동되고 익혀지고, 끓여져 한 끼 밥에 어울리는 국이 되었다. 배고픈 사람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밥퍼’ 현장에 죽은 명사나 썩은 냄새가 나는 원칙은 없었다. 모두가 생명력 넘치는 동사였다. 한 끼 밥을 위해 4시간을 달려온 사람들이나, 그들에게 따뜻한 진지를 지어 바치기 위해 추위를 뚫고 온 자원봉사자들이나, 차디찬 고등어나 모두가 동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말없이 밥을 먹는 사람들, 좁은 골목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어내어 마시는 사람들, 대형 밥통에서 모락모락 올라가는 김, 분주히 움직이는 봉사자들, “여기 밥 좀 더 주소”라는 소리, “조금이라뇨. 많이 더 드세요”라는 화답…. 동사였다. 우주를 살아있게 만드는 동사였다. 밥은 밥이 아니었다. 밥은 생명이었다. 사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동사의 삶을 사셨다. 그 스스로 생명의 밥이 되셨다.

명사형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동사형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 같다. “함부로 사랑을 말하지 말라. 너는 한번이나 ‘동사’였었는가!”

이태형 i미션라이프부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