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中 장윈 동시 연재 소설 양국서 번역 출간

입력 2010-12-17 17:48


소설가 박범신(64)과 중국 여성작가 장윈(56). 한국 문예지 ‘자음과모음’, 중국 문예지 ‘소설계’에 동시 연재했던 박씨의 장편 ‘비즈니스’와 장윈의 ‘길 위의 시대’가 두 나라에서 나란히 번역 출간됐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두 작가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교·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비즈니스’는 대중국 교역의 전진기지라는 명분의 환상을 앞세워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한 신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개발과 발전에 따라 반비례적으로 퇴락한 구시가지가 배경이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나’, 그런 ‘나’의 고객이면서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를 이끌어가는 고위층과 부자들의 집만 골라 털면서 신출귀몰하게 신가지지를 휘젓고 다니는 ‘그’. ‘나’가 몸을 파는 것이나 ‘그’가 도둑질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도덕과 윤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명분 속에 철저히 외면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인간적 순수성을 발견하면서, 결코 비즈니스일 수 없는 참다운 인간관계에 대한 감각을 조금씩 회복해간다.

박씨는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들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라는 자학적인 상상은 아프기 한량없다”며 “나는 이것을 ‘자본주의적 슬픔’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중 문학교류에 대해 “굴절된 현대사가 빚어낸 동북아 민족 사이의 문화적 격절을 뛰어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미지의 중국 독자를 만나는 개인적인 기쁨은 그다음의 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길 위의 시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시(詩)의 시대’였던 1980년대 중국이 배경이다. 소설 속 천샹은 지방 소도시의 대학교 4학년으로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문학도다. 그녀 앞에 어느 날 망허라는 시인이 나타난다. 천샹은 우연히 망허가 자신의 신작 시 한 단락을 읊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후 사랑에 빠져 하룻밤 정을 나눈다. 망허는 이틀 후 도시를 떠나지만 천샹은 두고두고 그를 그리워한다. 두 달 남짓 시간이 흘러 천샹은 졸업을 하고, 학교 선배인 라우저우와 번개처럼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후 일곱 달 만에 태어난 아기, 샤오촨. 사람들은 조산아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아이는 라우저우의 아이가 아니라, 망허의 아이었다.

천샹, 망허, 라우저우는 시의 시대가 만들어낸 초상이다. 작가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시’가 상징하는 모든 것이 멀어져간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들려준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이제 고결한 정신은 찾기 어렵다. 장윈은 그것을 소중한 것을 잃는 과정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 나의 80년대에 경의를 표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한국독자들이 이런 ‘80년대’를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본성과 금기의 충돌, 청춘의 아름다움과 장렬함, 거짓말과 신뢰, 파멸과 고통, 생명의 비애, 자유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은 세상 어디에나 똑같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장윈은 루쉰문학상 등 중국의 유력 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