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60년 밀알의 기적’을 말한다] 3인 좌담회

입력 2010-12-17 17:41


나눔이 나눔을 키우도록 ‘중개자 역할’ 더욱 힘쓸 것

1950년, 전쟁의 와중에서 외국원조를 받기 시작해 이제는 받았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 나눔의 역사. 국민일보는 그 나눔의 역사의 중심에 서 온 월드비전 60년을 맞아 ‘밀알의 기적’ 캠페인을 지난 3개월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 캠페인을 마치면서, 박종삼(75·사진 가운데) 월드비전 회장과 수혜자에서 후원자가 된 배효동(59·왼쪽)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강기태(29·오른쪽)씨가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회의실서 만나 월드비전 60년을 회고하고 새로운 나눔 방식에 대한 좌담회를 가졌다.

◇박종삼=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열네 살에 혼자 월남했어요. 미군부대 노무자로 일하며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전쟁 직후에는 독립문 쪽 땅굴에서 살았는데 김장철에 사람들이 밖에서 김장을 하면 남은 잎사귀를 서로 가지려고 애들끼리 싸웠어요. 그만큼 먹을 게 없었지요. 당시는 학교도 못 다니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뒤늦게 고학으로 공부했지요.

◇배효동=내년에 저는 육십 살이 됩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내 삶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구나 싶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미국 사람이 우리를 도와줬습니다.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훌륭하게 자라서 남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나는 3형제였는데 제가 두 살 때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형제를 잠깐 키워준 분이 대구에 있는 시설로 우리를 데려다 줬습니다. 형님들과 희락원이라는 시설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는데 월드비전 설립자인 밥 피어스 목사의 양아들(1대 1 결연)이었기에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지요. 지금 그 희락원은 경북유치원이라는 곳이 됐지요. 제가 밥 피어스 목사를 처음 뵌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열네 살 때였는데 그때 서양 사람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사실 안기면서도 무섭기도 했습니다.

◇박=전쟁 직후 모든 게 다 황폐해져 있었고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는데 애들이 수천명 모였어요. 실은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버터, 치즈 등 구호물자 받으려고 기다렸지요. 그때 밥 피어스 목사가 설교하고 한경직 목사가 통역을 해줬지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건 성경말씀이 아니라 옷이 필요하고, 먹을 게 필요하다는 것을. 또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위로도 필요하지 않느냐면서. 그래도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포기하지 말아라. 그분이 당신들에게 좋은 미래로 인도할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속으로 나는 ‘아 배고파 죽겠네, 오늘은 어디서 자지’라는 생각만 했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결국 그 이야기대로 됐습니다.

◇배=저도 그 이후 바쁘게 살아오다가 2002년부터 나도 도움을 줘야겠다 결심을 하고 월드비전 후원을 신청해 몽골과 국내 아동을 돕고 있습니다. 월드비전(당시는 선명회) 출신이니까 이제 월드비전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월드비전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저를 낳은 것이지요. 물론 국가적인 의미에서 한국은 이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습니다. 월드비전 한국도 해외에서 원조를 받다가 해외의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기관이 됐고요. 그런데 제 인생을 보면요.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제 자체가 ‘희망의 증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옛날이야기를 조금 더 할게요. 그때 서울은 고아원이 포화상태여서 다 수용할 수 없었어요. ‘낡은 것은 고치자. 작은 것은 늘리자. 없는 건 다시 짓자’라는 모토로 밥 피어스 목사는 그런 고아원들을 지원해서 아이들을 더 수용할 수 있도록 앞장섰어요. 모자원이나 고아원 등에 이런 도움을 주면서 월드비전이 생겨나는 토대가 된 겁니다. 피어스 목사님은 미국의 목사님들한테 이 이야기를 해 고아들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모금이 시작됐고 결국 성공의 열쇠는 결연에 있었습니다. 피어스 목사는 ‘세계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도 한 생명은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호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예전에는 사실 내가 고아라는 것, 또 시설 출신이라는 말을 못했습니다. 어디서든 ‘고’ 자만 나오면 마음이 아팠어요. 숨이 멎는 듯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주셨지요. LH공사에서 1급으로 일한 것,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직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증인, 희망의 증인이 되라, 그리고 이제 당당하게 말하라는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퇴직하면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살려고 계획하는 중입니다. 옌볜 과기대 가서 교수로 헌신하던가, 아니면 해외 3세계에 있는 월드비전 사업장에 찾아가서 ‘나도 여러분과 같은 시절을 보냈는데 이렇게 잘 됐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도울 수도 있겠지요. 나는 내가 겪어봐서 압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첫째는 물질일 수도 있지만 또 있습니다. 정서나 마음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갖고 있는 노하우, 경험 등을 전할 수도 있지요. 월드비전도 이를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배 교수님을 하나님이 보시면 ‘열매를 잘 맺었구나’ 하실 것 같아요. 이렇게 농사에 성공한 우리가 이제 아프리카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저와 세계를 같이 다니면서 함께 일할 방도를 한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강기태=저는 개인적으로 월드비전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역할은 몰랐습니다. 저 역시 평범한 20대처럼 초점은 ‘나’에 맞춰져 있었고 대기업 취업 등에 관심이 컸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트랙터를 몰고 전국일주를 결심할 때 ‘베푸는 삶’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서울에 왔을 때 트랙터를 상징으로 넣은 티셔츠를 만들어 그 수익금으로 기부하고 싶었습니다. 월드비전 홍보팀에 전화했더니 오히려 제게 ‘감사합니다’며 ‘같이합시다’라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된 거죠.

◇박=강기태 청년 같은 분이 펼치는 나눔운동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집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지요. 나눔을 계속해서 실천할 동기를 부여하는 강기태씨 사례가 계속 나올 때 나눔문화는 더욱 확산되리라 봅니다.

◇강=나누는 기쁨을 저만 하기에는 너무 아쉬워 저 같은 20대들에게 월드비전을 소개시켜 주고 있습니다. 80만원으로 세계여행을 한 대학생 정상근씨를 데려와 그 인세를 기부하기도 하고, 청춘 강연을 열고 있는 정태웅이라는 친구가 책 인세를 기부하고 싶다고 해서 또 소개시켜 줬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두 명씩 월드비전을 알리고 있습니다.

◇배=기태씨의 사역이 결국 피어스 목사가 한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사람을 계속 세워가는 것이 그런 정신이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기태씨처럼 하려면 ‘도움의 DNA’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월드비전이 있어야 하고요.

◇강=저는 ‘자칭 민간인 월드비전 홍보대사’입니다. 내년 3월에 트랙터를 몰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데 그때 월드비전 깃발을 달고 다닐 겁니다. 이건 말라리아 모기장 설치하는 여행이에요. 모금을 해서 월드비전에 기부하려고 합니다.

◇박=최근 사회적으로 나눔에 대해 냉소적으로 만드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문의전화가 오기도 하고, 기분 나쁘다며 후원을 끊는 소수의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돕는 일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없기를 바랍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도움의 약속을 믿고 있던 아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굶어 죽게 해선 안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강=앞으로 21세기는 정신적 빈곤이 가장 문제일 것이라고 봅니다. 20대만의 새로운 ‘나눔’이라는 가치를 만들고 이를 잊지 않도록 지금부터 민들레 씨앗처럼 뿌려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시대가 ‘나눔과 전파’라는 가치를 잘 만들어 놓는다면 지난 60년 동안 월드비전이 일궈 놓은 선구자 역할의 열매를 더 맺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75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미쳤다’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대 치대를 수석 졸업했는데 목사가 되고 또 결혼도 안 하고 아이들을 돕고 그러니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 졸업 50주년 기념식을 해 다 모였는데 모두들 돈도 많이 벌었더군요. 자녀들도 세상적으로 참 잘 자랐고요. 그러나 동창들은 내게 “네가 독거노인으로 살지만 가장 축복받았다”고 말합니다. TV나 신문에 나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눔의 삶을 이 나이가 돼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진정한 성공은 돈이 많아 이루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월드비전만 41만명의 후원자가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기적입니다. 제 어렸을 때를 기억해 보면 이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거든요. 월드비전은 앞으로도 돕고자 하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비전을 다할 것입니다. 세계시민의식이 들어있는 이런 젊은 친구들과 함께 말입니다.

◇배=60주년이라는 건 한국 나이로 환갑이라는 소리인데요. 내년에 제가 60세가 되니 그 여정이 더 실감됩니다. 예전에는 수명이 60세였는데 이제 80세가 넘지요. 그만큼 발전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제가 앞으로 20년 더 할 일이 있다는 것도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미래가 더 기대됩니다. 월드비전이, 한국이, 그리고 제가, ‘받는 자에서 주는 자’가 됐다는 게 큰 기쁨입니다. 월드비전이 그동안 수혜자와 후원자를 연결해 왔는데 이게 더욱더 퍼져서 회사에, 학교에, 모든 가정에 기부와 봉사를 하나의 트렌드로 만드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월드비전이 계속 씨앗을 심어주기를 바랍니다.

◇박=두 분 오늘 귀한 시간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