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 공동체 르포… 소외이웃 한파 녹이는 한국교회 한 끼의 밥으로 따뜻해진 한겨울

입력 2010-12-16 10:01


“이 땅에 밥으로 오셔서 우리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다일공동체 진지기도 중에서)

너무나 흔하고, 또 맛난 것도 많아 이젠 외면받는 존재가 된 밥. 서울 답십리 554 밥퍼나눔운동본부 앞 골목길엔 이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길게 줄을 늘어선다.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15일 오전에도 800여명의 사람들이 이 밥을 먹기 위해 온몸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한결같이 남루한 모습이었다. 90세가 넘은 노인도 보였다. 청량리 인근뿐 아니라 의정부 등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배식 시작 3~4시간 전부터 진을 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한 끼 밥을 먹기 위해서 추위를 뚫고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밥은 곧 생명이다.

오전 11시, 진지기도와 함께 배식이 시작됐다. 정신없이 식판이 움직였다. 김치, 돌자반이 올라가고, 호박·버섯볶음이 반찬으로 채워졌다. 서울우유, 서울메트로, 한국전기연구원에서 온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길게 줄 지어 연탄을 나르듯 식판을 날랐다. 그중엔 연구원으로 일하는 두 명의 러시아인도 있었다. 배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그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들 역시 이름모를 사람들에게 한 끼 밥을 선사하기 위해서 강추위를 뚫고 왔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밥을 푸고 배식 작업에 참여했다. 발은 얼어붙고 반찬을 담는 손길이 분주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마음속 물음은 계속됐다. ‘나는 정말 밥인가?’

40분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입속으로 누룽지 한 조각을 밀어 넣어주었다. 선한 눈매에 빨간 코가 인상적인 함태형(50) 주방장이었다. IMF 환란 직후인 1998년, 알루미늄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시작된 노숙생활 2년 동안 그는 여기서 밥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2004년부터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주방장이 됐다. 밥퍼의 밥을 얻어먹다가 그 자신이 밥이 된 것이다.

정오가 됐는데도 골목길에 늘어선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살을 에는 듯한 한파도 아침 그대로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근처 쪽방촌 거주 독거노인이나 노숙인들이다. 이들은 아직도 서울 시내에 수없는 쪽방촌이 있다고 말했다. 멀리서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경기도 광명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한 노숙인은 “나 이외에도 멀리서 오시는 분이 많다”며 “여기서 먹는 밥 한 끼로 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맛있게 밥을 먹던 한 사람은 자신을 ‘거지 목사’라고 소개했다. 안수를 받았지만 여건상 개척하지 못해 사역지가 없는 상태다. 그는 “수년째 여기서 밥을 얻어먹고 있는데 조만간 노숙인 사역을 시작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밥퍼 본부를 나서는 95세 된 할머니는 “집에서 먹는 밥보다 훨씬 맛있다”며 “친구들도 만날 겸 1주일에 두세 번씩 들르고 있다”고 말했다.

밥퍼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 시작됐다. 장신대 졸업 후 영성수련원을 시작할 꿈에 부풀었던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역에서 만난 함경도 출신의 한 무의탁노인과 만난 후 진로를 바꿨다. 4일을 굶은 채 신음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그는 청량리역 광장 한구석에서 곤로에 라면을 끓여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리에서 14년간 밥을 나눴다. 지금의 가건물에서는 ‘함경도 할아버지’로 상징되는 밥을 찾는 사람들에게 8년간 밥을 해 먹였다. 오는 22일엔 서울시와 여러 이웃의 후원으로 건립되는 신축 건물로 옮기게 된다. 완공하고 이후 원활한 유지를 위해서는 2억1000만원 정도의 후원금이 더 필요하다. 밥퍼를 찾는 노숙인들은 한 끼 밥값으로 100원에서 200원을 낸다. 여기서는 ‘자존심 유지비’로 불린다. 물론 그 돈을 내는 것은 자유다. 무료로 먹는 사람들도 많다. 신축 건물을 위한 비용 가운데는 이들이 낸 1004만원의 ‘자존심유지비’와 헌금도 들어 있다.

23년간 ‘밥퍼 목사’로 굶주리는 이들에게 밥이 돼온 최 목사에게 밥은 뭘까. “밥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즉 밥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 땅의 사람들의 배를 채우고 눈물을 씻기는 밥이셨습니다. 수없이 밥을 펐지만 저는 지금도 밥을 푸면서 힘을 얻습니다. 밥은 곧 저의 정체성입니다.”

이날 최 목사에게 네번이나 “밥 좀 더 올려 주세요”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었다. 최 목사는 “아마 그 밥 먹고 몇 끼는 굶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배식은 1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보통 때보다 30분이나 더 길어졌다. 날씨가 추워지면 밥을 찾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다는 게 자원봉사자들의 설명이다. 추운 겨울, 내일도 길게 줄을 늘어설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들의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녹여줄 한 끼의 밥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될 수가 없다. 발은 감각이 없어졌고, 손목과 팔도 욱신거렸다. 설익은 밥 같은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저녁에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었다. 감사했다. 더불어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찰진 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밥 한 끼를 먹으려 수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정성껏 ‘진지’를 지어 바치는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태복음 25장 35절)

김성원 기자, 이사야 양민경 인턴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