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 맞소송·온갖 비방… 만신창이된 ‘현대건설 인수전’

입력 2010-12-16 21:26


원칙은 사라졌다. 편법이 등장하고 소송이 난무했다. 금융당국의 갈지자 행보에 눈치만 보던 채권단은 결국 스스로 판을 걷어찰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 과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금융이 10여년간 온몸으로 배워왔던 교훈을 모조리 망각한 최악의 실패 사례로 남게 될 전망이다.

◇만신창이 된 매각=출발은 채권단의 졸속심사였다. 채권단은 입찰제안서 마감 하루 만에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공정하게 평가했다던 채권단 발표와 달리 불과 이틀 만에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자금 1조2000억여원이 문제가 됐다. 당초 재무적 투자자(FI)로 알려졌던 나티시스 은행의 투자금이 사실상 차입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채권단은 심사 과정에서 이 문제를 알았지만 ‘현금’일 경우 차입 여부와 상관없다며 단순 감점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본격적으로 이를 문제삼으면서 채권단 간에도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다.

매각주관사인 외환은행은 “문제가 없다”며 현대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16일 “론스타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현대건설을 파는 게 외환은행 매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공기업인 한국정책금융공사와 민영화가 진행 중인 우리은행이 ‘승자의 저주’를 막아야 한다며 반발했다. 지나치게 서두른 외환은행과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두 기관의 불협화음은 결국 파행을 불렀다. 채권단은 17일 주주협의회를 열고 현대그룹과 맺은 MOU 해지 동의안과 주식매매계약 체결거부 동의안을 동시 상정하고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할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이 심사숙고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사태다.

◇말 바꾼 금융당국과 유례없는 비방전=매각 과정 내내 잡음이 일었지만 금융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채권단과 현대그룹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밝혔고, 정책금융공사가 금융당국에 FI와의 풋백옵션 계약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국회가 국정조사 의사를, 채권단이 2차 대출확인서도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밝힌 지난 15일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자금조달의 투명성과 내용이 적절하게 체크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채권단을 압박했다. 정작 필요할 땐 유의미한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뒤늦게 현대건설 매각 중단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불신만 사는 결과를 초래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체득했던 모든 교훈을 완전히 무시하고 시곗바늘을 10여년 전으로 되돌린 사건”이라며 “부실 관련 기업들을 모두 협상대상자로 선택한 데다 공적자금의 운영원칙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