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헌” 첫 판결

입력 2010-12-16 21:38


1974년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1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도의 정치성을 띤 대통령의 통치행위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면 법원이 사법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유신헌법을 비판하고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유언비어를 날조한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및 반공법 위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오종상(69·사진)씨에 대한 재심에서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1호는 국회의 입법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어서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권이 대법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이 규정한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오씨의 긴급조치 위반 부분은 면소 판결할 게 아니라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4년 1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선포한 긴급조치 1호는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한 사람은 영장 없이 체포·구속 등을 할 수 있고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받게 했다. 긴급조치는 75년 5월까지 9차례 선포됐다.

오씨는 1974년 5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가 부패돼 있으니 이것이 무슨 민주체제냐. 유신헌법 체제하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으니 이와 같은 사회는 차라리 일본에 팔아넘기든가 이북과 합쳐서 나라가 없어지더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정부를 비판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이 확정됐고, 지난 2월 재심을 청구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앞으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의 재심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만으론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