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말레이곰이 산으로 간 이유

입력 2010-12-16 17:48


“살아 있는 인간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너는 그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느냐?”

지난 6일 서울대공원 우리를 빠져나와 청계산으로 달아났던 말레이곰 ‘꼬마’가 15일 이수봉 근처에서 포획틀에 잡혔다. 라디오에서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마침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지은 소설 ‘세 번의 경고’를 읽고 있었는데, 위의 문장에 시선이 고정되어 다음 행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소설 속에 적혀 있는 훈계 같은 질문은 마치 꼬마에게 던지는 것 같았다. 빈 모더니즘의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중단편집 ‘엘제 아씨’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세 번의 경고’는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 ‘꿈의 노벨레’로 알려진 작가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매일 청계산 자락을 바라보며 다닌다. 도심에서 가깝고 험난한 산이 아니라 운동 삼아 청계산을 몇 차례 오르기도 했다. 청계산으로 도피한 꼬마는 어디에 꽁꽁 숨었을까, 탈출한 꼬마는 과연 자유로움을 탐닉하며 산속을 유영할까, 그 자유로움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꼬마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무엇일까. 24살 많은 암컷 곰 말숙이와의 불화가 꼬마를 탈출하게 만들었다는 유머를 보도하기도 했지만, 서울대공원 우리에서 벗어나 또 다른 우리라고 할 수 있는 청계산 자락에 갇힌 꼬마와 관련된 질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마음이 불편하고 근심이 많을 때 산에 오른다는 사람이 있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고,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m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던 박범신 작가는 ‘비우니 향기롭다’라는 책에서 일상을 멈추고 왜 산으로 가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나는 히말라야에서 보았습니다. 내가 본 것은 속도를 다투지 않는 수많은 길과, 본성을 잃지 않는 사람과, 문명의 비곗덩어리를 가볍게 뚫고 들어와 내장까지 밝혀주는 투명한 햇빛과 바람, 그리고 만년빙하를 이고 있어도 결코 허공을 이기지는 못한 설산들을 보았습니다. 또 감히 고백하자면, 행복하고 충만되기 위해 내가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행복해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현실로부터 떠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도피행각만 벌인다면 그것도 행복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꼬마는 청계산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인간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하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까. 그렇게 마음을 비웠을까. 16일부터 일반인들에게 다시 공개되었다고 하니, 꼬마의 유명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할 곰이 우리에서 곰인형처럼 살아가야하는 운명을 생각하면 참 안쓰럽다. 꼬마가 다시 직면한 현실에서 잘 적응하기 바라면서, 우리 인간도 마음을 조금씩 비우면서 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