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아버지가 아들 일자리 뺏는다고?

입력 2010-12-16 21:14


직장인 아버지와 졸업 후 바로 취직한 자녀의 흔치 않는 조합. 가문의 영광이고 홍복이다. 반면 아버지는 명퇴, 자녀는 수년째 취업예비군이라면 그야말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조합을 보태면 아버지는 현직이고 자녀는 취업난에 휘둘리는 경우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이 세 조합 중 첫째야 부러움의 대상이니 그로써 족하다. 문제는 둘째다. 그것은 중산층 몰락의 원인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활력마저 떨어뜨린다. 셋째도 자칫 둘째로 수렴하기 쉽다. 정년제도 때문이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둘째 조합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보아 머지않아 노동력 부족문제가 가세할 것이므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에 대비한 고령자 고용확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고령자 고용확대가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을 더욱 궁지에 밀어 넣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일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사태에 대한 우려다. 아버지가 아들의 고용기회를 빼앗아서도 안 될 테고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老·靑 일자리 다툼은 없다

그런데 고령자 고용확대가 과연 청년실업을 악화시키는 걸까. 해답은 서유럽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유럽 각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청년실업이 급증하자 젊은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고령자의 조기 퇴직을 권장했다.

이른바 ‘세대간 워크셰어링’ 정책이다. 공적연금 조기수급, 실업보험 장기지급 등을 통해 고령자들의 은퇴시기를 앞당겼다. 이

에 서유럽의 장년층은 앞을 다퉈 조기퇴직하고 연금생활에 들어갔다. 그들은 일찍부터 넉넉한 연금을 받아 세계를 주유하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고령자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급락했지만 높은 청년실업률은 요지부동이었다. 청년실업문제 해소는커녕 조기퇴직을 장려한 결과 날로 불어나는 연금재정이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서유럽 각국은 1990년대 들어 고령자 취업촉진책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보고서, ‘고령사회일본의 고용정책(2005)’에 따르면 고령자의 취업촉진과 청년실업 증가 사이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고령자 취업촉진이 청년실업을 높이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OECD는 그 원인을 숙련 고령자들의 일과 미숙련인 젊은 층이 맡는 일 자체가 서로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꼽는다. 이는 기업의 효율성에도 반한다. 고령층과 청년층이 같은 일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인다면 이는 기업이 숙련, 미숙련의 구분 없이 현장을 경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사례를 한국의 상황으로 바로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령자 고용확대와 청년실업 해소가 상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둘이 우리 사회에서 대립된 듯 비춰지는 까닭은 뭘까.

고령자 고용확대 의무화를

어쩌면 기업의 주장이 끼어들어 있는지 모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행 연공급(年功給) 체계에 따른 장년층의 고임금 부담을 정년제도가 말끔히 씻어준다고 본다면 고령자 고용확대를 반길 까닭이 없다. 말은 정년퇴직자 한 사람 임금으로 젊은층 두셋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느느니 비정규직이요, 주느니 퇴직에 따른 자연감소 일자리 아닌가.

기업친화만을 강조하는 정부의 모호한 태도도 한몫 거든다. 중장기적으로 노동력 수급에 애로가 예상되는 만큼 고령자 고용확대는 의무화해야 옳다. 청년실업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최소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