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노나메기

입력 2010-12-16 17:52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우정과 환대’의 개념에 대해 읽다가 며칠 전 백기완 선생의 콘서트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 이야기’에서 들은 단어가 떠올랐다. ‘우정과 환대’라는 다소 어색한 어휘를 꼭 맞는 우리말로 바꾼 ‘노나메기’. 무슨 매운탕용 생선 이름인가 싶지만 한마디로 노나(나눠) 먹자는 말이다. 재화는 무릇 내 것 네 것이 없고 모든 사람의 것이자 자연의 것이라는 게 백기완 선생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정과 환대도, 노나메기도 머나먼 이야기다. 흉흉한 소식만 들려온다. 연평도 포격 같은 무시무시한 사건은 물론이고 우리네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저거 미친 사람 아냐,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광란이 끝없이 일어난다. 백주에 사람을 차로 치어 놓고도 삿대질을 했다는 여선생이 있지 않나, 역시 한낮 대로에서 알지도 못하는 이를 흉기로 찔렀다는 사람이 있지 않나. 어째 사람들이 다 독이 올랐다. 내 것 뺏길까, 남들 다 가졌는데 나만 못 가진 것 없나 이런 초조함이 맥박처럼 툭툭 뛰는 것이 느껴진다. 10여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부터 그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더니 멈출 줄 모르는 느낌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다 한군데서 빚어낸 것처럼 화나고 지친 얼굴이다. 독하고 강퍅한 놈은 성경에 나오는 실한 알곡, 안 독한 놈은 쭉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자기계발이다 뭐다 꼭꼭 들어찬 알곡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독해지는데 정작 나보다 실한 놈 없나 보느라 독한 만큼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다. 분통만 늘어서 누구 화낼 놈 없나, 족칠 놈 없나, 착취할 놈 없나. 초조함에서 나오는 생존본능이 우리를 몰아붙인다. 당한 놈만 바보, 독해야 산다, 라고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회 분위기가 활활 탄다.

그러다 보니 독하지 않은 놈들은 픽픽 나가떨어진다. 오죽하면 하루에 서른다섯 명이 자살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대 자살자 배출이라는 별로 기쁘지 않은 1등을 먹었을까. 워낙에 여기가 ‘안 노나메기’의 세상이라 노나 먹을 재주 없어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더 살 기운도 없어 죽어 버리는 거지 싶다.

노나 먹기는커녕 절대 안 노나 먹고 남의 것도 가져다 먹어야 살겠다는 끝없는 굶주림, 지금 먹고 살 만해도 고픈 날을 위해 더 먹어 두겠다는 아귀 같은 맹렬한 생존본능 때문에 아침에 집을 나서기도 겁나는 것은 나뿐인가. 노나 먹자고 했다간 너 살만한가 보다 더 내놔라, 하고 뜯기기 일쑤인데 누가 노나 먹자고 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노나메기’ 하자고 제 몫의 떡과 물고기를 내놓아서 잔치가 벌어진 것을 잊지 말고 마음이 강퍅해질라치면 자꾸자꾸 외워야겠다. 신자유주의를 깨는 주문, 노나메기 노나메기.

◎ ‘김현진의 이건 뭐야?’ 연재를 마칩니다.

김현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