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직장인의 천국’ 만드는 한미파슨스 김종훈 회장

입력 2010-12-16 17:53


“기업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힘 있어”

아기 낳으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3개월을 의무화해서 최소 6개월의 휴가를 보장해주는 회사, 암에 걸려도 치료 후 복직이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회사, 경제위기에는 “구조조정 한 명도 없다”는 약속부터 하는 회사, 고객이나 주주보다 직원이 먼저라는 회사, 창업자가 자발적으로 사내에서 후계자를 발탁하는 회사….

이런 회사가 있다. 한미파슨스. 1996년 창업됐고 종업원은 650명이다. 국내 1위 건설사업관리(CM) 회사다. 이름도 생소한 이 회사가 올해까지 8년 연속 ‘훌륭한 일터 상’을 받았고, 3년째 대상을 차지했다. 2015년까지는 일하기 좋은 회사 평가에서 세계 1등을 하겠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이 회사 김종훈(61) 회장이 지난달 책을 냈다. 제목은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21세기북스).

이게 다 사실이야? 이런 회사가 정말 있어?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 서평 중에는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지난 14일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서울 삼성동에 있는 직장인의 천국을 찾아갔다.

-직장이라고 하면 대개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꿈이나 보람, 사회, 기여, 이런 차원에서 회사생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직장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잖아요. 직장이 징그럽고 지겨우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죠. 직장의 의미에 대해서 재조명할 필요성이 있다고요. 지금은 급부와 반대급부 관계로 전락하고 있단 말예요. 회사도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식이고. 직장은 꿈을 실현하는 터전이 돼야 하지 않겠어요? 또 우리는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거든요. 한솥밥의 인연이란 게 사실 대단한 거죠. 그렇게 해서 직장의 의미를 승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회사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자긍심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달 한 차례씩 전 직원이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아마도 이런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유일할 거예요. 또 창립 당시에 직원들 주식이 하나도 없었는데 10년 만에 주식 100%를 직원들이 소유하는 특별한 회사가 된 거예요. 직원이 암에 걸렸다면 보통 책상 치우겠죠? 우린 안 치운단 말예요. 구성원의 불행을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병에 걸려도 치료가 끝나면 복직한다, 그게 회사의 규정인가요?

“규정은 없는데 불문율처럼 된 거죠. 황 부장이란 사람이 있어요. IMF 외환위기 때 우리도 굉장히 어려워서 재택 순환근무를 했어요. 이 친구가 인사팀장이었는데, 자발적으로 재택근무를 했고 제일 오래 했어요. 그랬던 사람인데 암에 걸려 3년 넘게 투병했죠. 치료 받고 복직해서 지금은 이사가 됐어요. 아픈 사람들 자리 지켜주는 게 회사 입장에서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거기 들어가는 비용 따져보면 얼마나 되겠어요? 그 사람들이 왜 병에 걸렸어요? 회사 일 하다가 그렇게 된 건데.”

-그동안 노사 갈등이 한 차례도 없었습니까?

“당연하죠. 노조가 없는데요 뭐. 저는 규정이 애매하면 회사 편에 서지 말라고 얘기해요. 직원 편에 서서 규정을 적용하라는 거예요. 협력업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회사가 설사 불리하더라도 이미 한 약속은 존중하라고 하죠. 저는 협력업체에 돈 잘 주는 것을 중시해요. 경영지원실에 가서 종종 그걸 챙깁니다. 발주자로부터 돈을 못 받았더라도 우리가 협력업체에 줄 돈은 제때 잘 줘라, 그렇게 말하죠.”

-협력업체를 특별히 챙기는 이유가 뭡니까?

“그런 게 선순환을 만들어내요. 돈 안 주는 회사로 알려지면 협력업체들이 우리와 거래할 때 단가를 올릴 것이고,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게 마련이에요. 돈 확실하게 잘 준다고 소문나면 당연히 좋은 조건에서 거래가 성사될 거 아니겠어요? 그게 선순환이죠. 신뢰가 있으면 싸게 일을 할 수 있죠.”

-중소기업인데도 출산이나 육아에 대한 지원책이 어느 대기업보다 나아 보입니다.

“다른 대기업처럼 우리도 자녀 2명에 대해서 대학까지 학자금을 지원했었어요. 그러다가 2000년도부터 자녀가 몇 명이든 무제한으로 지원하는 쪽으로 바꿨어요. 올해 와서는 입양자에 대해서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고요. 또 10년 전에 이미 출산휴가 6개월을 의무화했어요. 그렇게 한 건 우리 사회에 인구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비록 조그만 기업이지만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싶었고, 다른 기업들이 동참하길 원했던 거예요. 왜냐하면 인구 문제는 정부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어요. 기업이 나서야 되는 거거든요.”

-기업이 나선다고 인구문제가 해결될까요?

“요새 여성들이 애 안 낳는 이유가 뭡니까? 찾아보면 다 기업과 관계돼요. 요즘에는 여성들도 거의 다 직장생활을 합니다. 출산하면 회사 그만두거나 회사생활 하더라도 굉장히 어렵게 돼요. 기업이 나서서 육아 부담을 해결해줘야 하는 거죠.”

-기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기업이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경제 성장이나 고용 창출 외에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우리나라에는 여러 분야에서 에러가 있고 혼란이 있어요. 이걸 누군가는 고쳐야 합니다. 정부도 있고 시민도 있지만 기업의 몫도 있는 것이죠. 공공보다 기업의 힘이 더 큰 시대가 왔거든요. 그런데 기업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서 되느냐? 그건 아니란 말예요. 이 사회의 바탕 위에서 기업이 성장한 것이고, 국가와 사회의 많은 혜택을 받아서 기업가가 부를 축적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이고.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보세요. 기업이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어요.”

-직장인의 천국이라고 하는데, 직원들 중에 어느 정도가 회사를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 회사에서는 천국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아요. 3, 4년 전부터 구인광고에 ‘직장인의 천국을 구현하는 한미파슨스’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는 책 제목도 직원들이 지어준 거예요. 우리는 회사를 만들 때부터 이상향을 추구했거든요. 이상적인 직장, 꿈의 직장, 더 나아가 직장인의 천국을 지향했다고요. 우리가 완벽하게 다 성취했다고는 절대로 얘기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꿈의 직장이라는 지향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15년 동안 해 왔다는 게 중요한 거고 자랑스러운 거죠.”

-고객이나 주주보다 직원이 먼저다, 회사의 이익보다 직원의 이익이 우선이다, 이런 경영철학도 파격적입니다. 직원을 고객이나 주주, 회사 뒤에 놓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직원을 행복하게 해주고 대접해주면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고, 성과가 좋으면 고객이 만족하고 다시 일을 맡기게 될 거 아니에요? 그러면 회사는 발전하고 당연히 주주가치가 올라가는 거죠. 저는 그런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본 거죠. 이게 개똥철학이 아니에요. 외국의 탁월한 CEO(최고경영자)나 학자들이 이미 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15년 경영을 하면서 원칙을 뒤집거나 부정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까?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죠. 그런데 큰 틀에서는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고 보죠.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왔을 때인데, 우리가 맨 먼저 한 일이 ‘한 명도 구조조정을 안 하겠다’는 선언을 사내에 공표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남아도는 인력이 30∼40명 있었거든요. 경제상황이 자꾸 어려워지니까 경영관리 부서에서는 사람을 정리해야 되겠다, 그래요. 단칼에 안 된다고 했죠. 그건 약속이었기 때문에.”

-자녀가 있으시겠죠?

“딸만 둘이에요.”

-자녀나 가족에게 기업을 넘겨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란 측면에서 후계 승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의 선진기업에서는 사내에서 후계자를 발탁하는 경우가 많아요. 국내에서는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잘못된 승계가 이뤄져서 기업이 망하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7년 전부터 승계를 준비했습니다. 5년에 걸쳐서 후계자를 선정했고, 2년 전에 후계자를 사장으로 승진시켰죠. 저는 65세까지만 하겠다고 이미 발표했어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