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영신 (7) ‘학문통해 주님의 영광 드러내겠다’ 다짐

입력 2010-12-16 18:05


로버트 벨라 교수는 다른 사회학자와는 다른 점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사회를 깊이 있게 보려고 하는 점이다. 그것은 사회 속의 어떤 상징이나 가치, 의미, 종교를 들여다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주로 사회학 이론을 강의했는데 그 강의 외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그분을 만나는 ‘인디펜던트 코스’에도 참여했다. 한 학기는 막스 베버, 한 학기는 에밀 뒤르케임을 주제로 토론하는 식이었다. 그분이 학부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일본사였다. 그만큼 동양에 관심이 많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동양에 관심을 갖도록 하셨다.

그분의 또 하나 특징은 감투를 쓰지 않는 것이다. 학교 안팎의 여러 자리에 대한 얘기가 오갔지만 그분은 오직 강의에만 전념하셨다. 내가 그분 책을 여러 권 번역했지만 아직 못한 게 있다. ‘The Broken Covenant’로 ‘깨어진 언약’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200여년 전에 만들어졌을 때는 비전, 이상, 가치가 있었는데 200년 후에 이것이 다 깨져버렸다고 하는 내용이 담긴 두껍지 않은 책이다. 그 책은 미국의 역사를 예찬하지 않는다. 그것을 깊이 성찰하고 자기비판하는 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회과학도나 인문학도들이 이런 학문 세계를 받아들이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덮어놓고 미화하려는 것보다는 문제가 무엇인지 뿌리부터 되짚어보려 하는 그런 공부, 그것이 진정한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벨라 교수는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의 자세로 미국 사회를 진지하게 성찰했던 것이다. 난 벨라 교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진정한 사회학자구나’ 하는 감화를 받았다. 많은 사람이 학문을 열심히 하게 되면 신앙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앙을 열심히 하게 되면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학문을 세속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잘 안 바뀐다고 나는 생각한다. 회사 경영자나 노동자도 기독교 윤리에 의해 개혁하고 바꾸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공동체 내에 부정부패가 있으면 거대한 구조의 부속품으로 알아서 기계적으로 돌아갈 뿐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난 이런 부분에서 벨라 교수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분은 나의 중요한 모형(롤모델)이 되었다. 그분을 통해 나는 ‘대학 교수가 되려면 학문을 통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야지 학문 따로 신앙 따로여서는 안되겠다. 이 영역에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분을 알고 나서 나 스스로를 사회학자라고 보지 않았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난 뒤늦게 사회학을 공부했지만 그렇게 사회학을 공부해 보니 미국에서 한 과목만 들어도 한국에서 사회학과 학부를 나온 것 이상으로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학 교재라고 하는 것은 형편없었다. 번역 등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이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주로 사회조사 수준에 머물렀다. 나는 한국 사회학을 그야말로 표피적이고 수준 미달로 생각했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