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실시된 전국민 대피 훈련… “전쟁 안날텐데” 대부분 시민들 무시
입력 2010-12-15 18:26
“실제로 대피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전쟁이 난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실감을 못했었는데….”
서울 아현중 3학년 7반 교실에서 만난 송헌주(15)군은 15일 민방위 훈련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송군은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한다고 생각하니 귀찮지는 않다”고 했다. 송군과 같은 반 학생 27명은 훈련이 시작되기 전 훈련 이유와 대피방법 등을 설명하는 담임교사의 말을 경청했다.
오후 2시 공습경보가 올리자 학생들은 대피 장소인 지하철 2호선 아현역 역사로 향했다. ‘뛰지 말라’는 담임교사의 주의에도 일부 학생은 긴장한 탓인지 역사로 달려가기도 했다. 역사에 모인 학생들은 학급별로 줄을 서서 대기하다 15분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김수미(41·여) 교사는 “실제로 훈련에 참여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다르다”며 “1년에 한두 차례는 대피훈련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민방위 특별 대피훈련이 실시된 이날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전시 상황이 연상되는 훈련이 실시됐다. 훈련은 구제역이 발생한 경북 등을 제외한 전국에서 진행됐다. 전 국민 대상 대피훈련은 1975년 민방위 기본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도로 곳곳에 노란색 연막탄이 터진 상계동 롯데백화점사거리 일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이렌이 울리자 구세군 냄비 옆에서 종을 흔들던 자원봉사자는 백화점 건물 안으로 피신했고 행인들도 지하철 4호선 노원역 역사로 걸음을 옮겼다. 김청화(53·여)씨는 “국민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므로 협조하는 게 당연하다”며 “앞으로 이런 훈련을 더 체계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명동에서는 경찰관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행인들에게 상가 안으로 대피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다수가 무시했다. 시민들은 경찰관들이 “제발 대피해 달라”고 호소하면 근처 가게에 잠시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거리로 나왔다.
봉천사거리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경찰관과 민방위 대원들이 대피할 것을 거듭 부탁한 끝에야 시민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경보가 울리고 10분이 지날 때까지 많은 시민들이 평소처럼 인도를 오갔다. 조현우(23)씨는 “정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이런 점 때문에 다들 훈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거리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김영훈(67)씨는 “젊은 사람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지훈 최승욱 김수현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