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전국 확산 비상] 의심신고 이튿날 통제 초소 세워 ‘안이한 대응’
입력 2010-12-16 02:39
원인과 향후 파장 5가지 의문점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경북에 한정됐던 구제역이 경기도 양주 연천에 이어 파주까지 확산됐고, 경북에서도 추가 의심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5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구제역 확산 사태를 짚어본다.
(1) 방역망 뚫렸나, 새로운 공포의 시작인가
농림수산식품부의 구제역 확산 방지 대책은 ‘극약처방’이라 불릴 정도로 초강수다. 구제역 발생 농가와 주변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농가까지 예방적 살(殺)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북에서만 발굽이 둘로 갈라진 가축 14만8000여 마리가 매장됐다. 그럼에도 15일 양주시 남면과 연천군 백학면 돼지농장 2곳과 파주시 부곡리 젖소농장에서 구제역 발병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서 방역 당국을 당혹케 했다.
경기도 최초 발생농장인 양주와 연천 돼지농장 주인은 동일하다. 돼지를 사고파는 역할을 도맡은 동업자도 1명 있다. 방역 당국은 이 두 사람을 상대로 출입국 기록을 조회한 결과 최근 구제역 발생 국가를 다녀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경북 지역 방역망을 뚫고 경기도로 전파됐을 가능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이들 농장의 구제역 바이러스 역시 경북 지역과 동일한 O형이다. 다만 유전자 염기서열까지 동일한지가 관건이다. 조사 결과는 16일 오전 나온다.
경북 군위군의 축산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1명이 지난 3일 연천군 구제역 발생 농장으로 옮겨간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그러나 군위는 구제역 발생 지역이 아니어서 현재로선 전염경로일 가능성이 낮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방역망이 뚫렸는지는 경기도와 경북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같은지 봐야 알 수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구제역 증상이 뚜렷한 경기도 돼지농가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된 후 이튿날에야 주변 48곳에 이동통제 초소를 설치하는 등 확산 가능성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 경기권 살처분 확대 왜 주저할까
정부는 안동 구제역 발생시 돼지농장의 경우 주변 3㎞ 이내, 소농장은 500m 이내 발굽이 둘로 갈라진 모든 가축을 살처분했다. 돼지의 경우 소에 비해 바이러스 전파 속도가 최고 3000배가량 빠르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기도 첫 구제역 발생지인 돼지농가 2곳의 경우 500m 이내만 살처분했다. 발생 농가의 돼지 2400마리를 포함해 살처분 대상은 인근 소, 돼지 1만6600여 마리에 그쳤다.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농식품부에서 열린 가축방역협의회에서도 살처분 확대와 관련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생지 주변 축산농가가 워낙 밀집해 있어 엄청난 반발이 예상돼서다.
농식품부 이창범 축산정책관은 “(살처분 범위를) 3㎞로 확대했을 경우 매몰 처분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주변 농가들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발생 농가 2곳의 3㎞ 범위 내에는 무려 8만3000여 마리의 가축이 밀집돼 있다.
(3) 다른 시·도 추가 감염 가능성은
농식품부는 경기도 확진 판정 직후 구제역 위기경보 발령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에서 차관급이던 구제역대책본부장 자리가 장관급으로 격상되는 등 외견상 변화 외에 행정안전부 주도로 정부합동지원반이 발생 시·도에 설치돼 인력이나 장비동원 문제, 군·경찰 동원 문제에 대한 총괄적인 관리에 돌입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경기도의 경우 항원에서만 구제역 바이러스가 검출돼 조기에 발견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전국적 확산 가능성을 예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동 구제역 전파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축산물 직접거래 외에 축산 컨설팅 전문가나 왕겨 운반 차량을 통한 전염 가능성은 열려 있어 여타 지역 확산 가능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지적이 유력하다.
(4) 왜 겨울철에 맹위 떨치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제역은 주로 봄철에 발생하는 가축 질병으로 알려졌다. 구제역 발병이 잦은 중국에서 황사에 묻어 날아오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올 1월 경기도 포천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데 이어 이달 구제역 확산이 가속화되면서 이 같은 통념은 깨졌다. 봄보다 오히려 추운 겨울에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서울대 박봉균 수의과대 교수는 “이번에 확인됐듯 구제역 바이러스는 영하로 떨어질수록 야외 생존력이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섭씨 50도 이상에서 조리하면 쉽게 죽지만 영하의 기온에서는 가축 배설물 속에 파묻힌 상태로 봄까지도 살 수 있다”고 전했다.
(5) 경제적 타격은
경북 지역에 국한됐던 구제역 문제가 경기권으로 확산되면서 축산농가의 타격도 불가피하게 됐다. 살처분 대상 농가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쇠고기, 돼지고기 소비 위축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돼지고기 삼겹살 기준 500g당 7500원선에 거래되는 등 가격 변화는 거의 없다”며 “다만 여타 지역 확산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류 수출 시장의 타격도 미미한 실정이다. 돼지고기의 경우 올 들어 수출된 물량이 일본 필리핀 태국 등으로 나간 2t가량에 불과하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한 직후인 지난 9월 필리핀 태국 등지로의 수출 협상이 재개됐지만 이마저 구제역 발병과 함께 무산됐기 때문이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