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차이나 스쿨

입력 2010-12-15 17:46

일본 외무성에는 입성(入省)할 때 어느 나라 말을 전문 외국어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어학벌(語學閥)이 있다. 아메리카 스쿨, 저먼 스쿨, 러시아 스쿨, 차이나 스쿨이 대 표적이다. 영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일본제 영어 차이나 스쿨은 2002년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산케이신문의 심층 보도를 계기로 유행하게 된다.

산케이신문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인 1966∼77년에 외무성에 들어와 대만과 중국에서 언어 연수를 받은 외교관을 차이나 스쿨의 전형으로 규정했다. 1998년부터 2010년 6월까지 세 명의 주중 대사가 잇달아 이 그룹에서 배출됐다.

친중파로 의미가 확장된 차이나 스쿨은 정치권에도 뿌리를 뻗었다. 한때 총리 물망에 올랐던 가토 고이치 자민당 의원은 외무성 출신으로 대만대학에서 유학하고 홍콩 부영사와 외무성 중국과 차석사무관을 지낸 중국통이다. 1972년 중·일수교를 계기로 친중파 정치인들이 등장했다. 수교의 주역 다나카 가쿠에이를 비롯해 후쿠다 다케오 등 총리급 거물 정치인들이 여기에 앞장섰다. 이들의 아들딸인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과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도 대를 이은 친중파다.

민간 기업에서도 중국 업무 담당자들을 차이나 스쿨에 비유한다. 올해 6월 니와 우이치로 전 이토추 회장이 주중대사로 깜짝 발탁된 것도 이토추가 일본 종합상사 중 ‘중국 최강’으로 불리는 점과 무관치 않다.

차이나 스쿨 또는 친중파 인사들이 중국과의 우호 관계에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국력과 함께 반일감정도 커지자 지금은 ‘일본인이면서 중국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중국과 관련된 이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있다.

북한의 잦은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중국에 대해 갈급해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정·관계 유력 인사들과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모양이다.

외교통상부의 현실은 차이나 스쿨이란 이름을 어디에 붙이기조차 적절하지 않다. 내년부터 예산과 인원을 늘린다고 하나 중국통과 중국 인맥은 하루이틀에 만들어질 일이 아니다.

외교의 아쉬운 구석을 정치인들이 메워주어야 하는데 아는 게 싸움질뿐이니. 2009년 600여명을 이끌고 중국에 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환대를 받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같이 통 큰 외교 특사(特使)가 한·중 간에도 필요한데 만들 방법은 없고….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