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통닭에게서도 배울 줄이야

입력 2010-12-15 17:41


“5000원짜리 통닭 통해 상생과 공정의 실천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어”

통닭 1마리가 이처럼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킬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통닭 브랜드로는 낯선 이름인 ‘통큰치킨’은 지난 9일 등장 때부터 요란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든 종합일간지에 전면 광고가 게재됐고 그 광고가 실린 신문의 다른 지면에는 ‘1마리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통닭을 소개하는 기사가 거의 예외 없이 실렸다.

기사는 통닭 알리기가 주 내용이었으나 한편에는 재벌인 롯데마트의 통닭업 진출을 우려하는 지적이 더해졌다. 앞서 또 다른 재벌인 이마트가 피자 만들기에 뛰어든 데 이어 국내 최대 유통기업이 닭을 튀긴다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 관심을 끌었다. 나아가 예상을 뛰어넘는 싼값은 ‘통닭소동’을 예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판매 첫날부터 ‘통큰치킨’은 눈길 끄는 뉴스가 됐다. 신문과 방송은 통닭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앵글을 맞췄다. 매장 측은 번호표를 나눠주며 고객들의 ‘닭싸움’을 진정시켜야 했다. 동시에 사회적 이슈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 보장과 대기업의 영세업자 죽이기’ 논쟁이 점화됐고, 여론은 ‘5000원 통닭’을 질타하는 측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롯데마트는 결국 청와대의 위력에 두손을 들었다.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질타에 전격적으로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16일까지, 그러니까 불과 8일 만에 ‘통큰치킨’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치킨은 사라지는데 역풍은 오히려 거세다. 네티즌들은 프랜차이즈 업체의 통닭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900g짜리를 롯데마트는 5000원에 팔았는데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600∼800g 크기를 1만4000∼1만8000원 받는 것은 폭리라는 주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업체의 가격 담합 조사에 나섰다. 통닭 1마리의 등장에 소비자, 네티즌, 공정위, 청와대, 언론 등이 출연해 한편의 시트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번 파동의 대차대조표는 어떨까. 가장 큰 피해자는 롯데다. 한마디로 그룹의 스타일을 구겼다. 거품을 뺀 착한 가격에 통닭을 공급하고자 할 의도였을 뿐 다른 상품을 팔기 위한 ‘미끼상품(loss leader)’은 아니었다고 하나 그걸 누가 믿을까. 그렇게 말하는 롯데 관계자들은 과연 그 말에 양심의 무게까지 걸 수 있을까. 유통업 최강자 롯데는 자본주의의 원칙에는 충실했을지 모르나 자본주의의 정신은 무시했다. 롯데는 ‘자유경쟁’에는 주목했으나 ‘공정경쟁’은 외면했다. 시장은 무한 경쟁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한 관계를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기본 사실을 모른 척했다. 그 결과 여론을 거스르고 청와대의 심기마저 불편하게 했다. 남북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요즘의 분위기상 안보에 치명적인 취약점이 노출된다는 군의 반대와 특혜 의혹까지 감수하며 현 정부 들어 어렵사리 허가를 얻어낸 잠실 제2롯데월드 123층 초고층 사업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룹 차원의 비상이 걸린 것은 아니었을까. 유통재벌 롯데가 통닭 1마리 때문에 가장 밑진 장사를 했다.

소비자, 네티즌, 프랜차이즈 및 영세 통닭집 업주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소용돌이에서 이득을 본 측은 없다. 소비자는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통닭을 날렸고, 롯데마트를 굴복시킨 네티즌은 다시 프랜차이즈 본사와 씨름 중이다. 프랜차이즈 통닭 판매상들은 비싼 통닭을 판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시장 한 구석의 통닭집도 5000원 가격의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공정위의 처신이 진중치 못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그렇다고 소득이 없었을까. 무엇보다 ‘상생’과 ‘공정’의 실천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동안 숱한 논점만 제기되고 해법을 찾지 못했던 대형 자본의 사회적 책임이나 착한 소비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실천 요강이 시급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소비는 이념이 아니다’라는 이마트 피자의 구호와 달리 ‘소비는 이념이더라’는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덤이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