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리베이트 쌍벌제
입력 2010-12-15 17:41
제약업계와 의료계에 의약품 리베이트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지난 13일 국내 중견 제약사 영업사원과 국공립병원 14곳의 의사 등 60여명이 수억원대 불법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포착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2008년부터 올해 9월까지 주고받은 리베이트 관련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 경남 거제시 보건소에서 제약사 직원과 공중보건의 간 리베이트 사건이 터진 지 일주일이 채 안돼 또다시 리베이트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한국제약협회 이경호 회장은 투명경영을 위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발효된 ‘리베이트 쌍벌제’의 하위 법령이 확정돼 13일부터 시행에 들어가자 제약업계의 자정 노력을 다시 한번 지켜봐 달라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불공정 거래, 리베이트 등 제약업계의 오명을 정화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는 취지의 담화문은 인천발 리베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무색해졌다.
더구나 인천과 거제 사건의 리베이트 제공 시점을 보면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리베이트-약가 연동제’ 이후 제공된 리베이트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리베이트-약가 연동제는 리베이트 행위가 적발되면 해당 약품 값을 최대 20% 깎는 것으로,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 처벌 방안 중 하나로 도입됐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사건들은 정부가 검은 커넥션을 근절하기 위해 고심 끝에 도입한 리베이트 근절 제도가 약발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약업계는 그동안의 자체 리베이트 근절 선언이 ‘헛구호’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특히 거제시 공중보건의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건넨 제약사 중에는 국내 최상위 제약사 2∼3곳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준다. 제약사 관계자는 “‘리베이트-약가 연동제’ 시행 이후 10대 제약사 CEO들이 모여 리베이트 중단을 선언하고, 업계 전체에 투명한 영업을 주문했는데 이번 사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며 혀를 찼다. 결국 매출과 실적 앞에서 누구든 ‘깨끗한 백조’가 될 수 없음을 제약업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달 말부터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쌍벌제는 불법 리베이트를 주다 적발되면 제약사뿐 아니라 받는 쪽인 의사, 약사도 처벌하는 제도다. 하지만 쌍벌제 하위 법령인 시행 규칙에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어 실제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애초 경조사비 20만원 이하, 명절 선물 10만원 이하, 강연료 1회 100만원 이하, 자문료 연간 300만원 이하까지만 합법으로 인정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하는 안을 마련했으나 실제 발표된 시행 규칙에는 이 같은 규정이 모두 삭제됐다. 게다가 적발될 경우 보편적 관행인지, 판촉 차원의 리베이트인지 사안별로 판단키로 했다. 이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애매한 잣대로 제대로 된 단속을 기대하긴 어렵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리베이트는 엄한 처벌 규정이 있어도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 거제와 인천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이 이를 말해 준다. 지금 제약업계와 의료계는 쌍벌제의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예년의 경우 이맘때 의사들의 송년회에 제약사 영업사원이 제품 설명회를 핑계로 참석해 식사비 등을 대신 내 주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의사들이 자체 비용으로 충당하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제약사들도 연말연시 의사들을 초청하는 행사 계획을 뒤로 미루거나 아예 잡지 않고 있다. 겉으론 쌍벌제의 약발이 먹히는 듯 보이지만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식의 이런 행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제약업계, 의료계의 ‘선언적 자정 노력’은 더 이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실효성 있는 리베이트 근절책을 위해선 정부의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복지부는 이번 시행규칙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옳다.
민태원 문화과학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