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숙 무지개청소년센터 연구개발팀장 “이 아이들도 대한민국 미래자산”
입력 2010-12-15 16:26
11일 오후 서울 대림동 구로아트밸리 소강당은 시끌벅적했다. 오색 풍선으로 장식된 무대 위에 각기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얼굴에 한 가득 웃음을 띤 채였다. 정신없이 뛰어놀던 아이들은 행사가 시작된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원주민이 사용하는 타갈로그어와 한국어로 진행된 행사 ‘꾸무스타, 이키나가갈락(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는 다문화가정 자녀를 보살피는 무지개청소년센터가 주관했다. 필리핀 출신 다문화가정 자녀로 이뤄진 노래팀 ‘무카스둠바’가 무대에 올랐다. ‘무카스’는 내일, ‘둠바’는 리듬이라는 뜻의 타갈로그어다.
체크무늬 셔츠에 예쁜 털모자를 쓴 아이들이 악기를 손에 쥐고 공연을 시작했다. 이들의 함박웃음에 객석은 들썩였다. 공연의 모든 순서가 끝난 뒤 한 아이가 마이크 앞에 다가서 미리 써놓은 편지를 읽었다. 아이는 어눌한 한국말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갔다. “선생님,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친구들아 정말 고마워.” 이때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무지개청소년센터 송연숙(46) 연구개발팀장이었다.
무지개청소년센터는 다문화가정 자녀, 탈북자녀 등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능력을 키워가도록 돕고 있는 곳이다. 한국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졌다. 송 팀장은 이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이 아이들은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길잡이가 없을 뿐입니다. 단순 복지수혜자도 잠재적 위기의 싹도 아니에요. 이제 우리나라의 미래 자산으로 봐야 합니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올바른 교육을 통해 능력만 갖출 수 있다면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팀장은 그 전제 조건으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점, 한국 아이들과 동등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송 팀장과 같은 의견이 일부 사회복지사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지만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여전히 어려운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모두 ‘한부모’ 가정 자녀들이에요.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일을 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센터에 맡겨질 수밖에 없어요.”
송 팀장은 센터에서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기르지만 이들이 커서 역량을 발휘할 곳은 턱없이 부족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던 어린 친구가 있었어요.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죠. 우리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삶을 돌아보고 목표를 세웠다’고 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송 팀장은 그 아이가 현재 일반 중학교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잘 적응해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고 했다.
그는 법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동아건설 법무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특별한 것 없는 일반 회사원이었다. 회사 내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그가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 만난 한 아이 때문이었다. 그는 20대 후반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 30대 초반부터 주일학교에서 중·고등학생을 맡아 가르쳤다.
“중학생쯤 된 일탈청소년이 있었어요. 항상 핫팬츠를 입었고 담배를 피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회에는 빠지지 않고 매주 나오더군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말씀과 기도만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는 신앙생활의 기본 외에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그것’을 찾기로 했다. 그가 3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사회복지학 공부에 빠져든 이유다.
“공교롭게도 당시 IMF 때문에 명예퇴직을 했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청소년을 위해 일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학교폭력퇴치국민협의회’의 사무국장으로 5년 동안 일한 뒤 지금의 일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저는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청소년에 대한 비전을 발견했고, 30대에 공부했으며, 40대에 그것을 구체화하고 있잖아요. 하던 일을 팽개치고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 쉽지는 않았어요.”
센터 아이들 역시 도전정신을 가지고 힘든 한국 생활을 이겨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그들이 사회적 편견에 꺾이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한 가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아이들이 하나님을 빨리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빠를수록 행복이고 축복이기 때문이죠. 10대에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겁니다. 현실은 힘들지만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하나님께 쓰임받을 테니까요.”
글 조국현 기자·사진 구성찬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