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자식도 없는 할머니, 되레 나를 걱정했다

입력 2010-12-15 18:01


국민일보 인턴기자 소록도 봉사 2박3일

무관심과 편견도 질병의 일종이라면 아마도 고질병에 속하지 않을까. 일찍이 예수님은 한센병 환자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 8:3) 고 말씀했다. 세계나학회는 1992년 서울총회에서 한센병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도 고개를 내젓는 이들이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엔 완치된 이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 후유증으로 홀로 생활할 수 없는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이다. 이들에게 자원봉사자의 손길은 절대적이다. 곽새롬 신재범 인턴기자가 이달 초 2박3일간 소록도 자활봉사센터에서 한센인과 함께했다.

‘이 일은 내가 원하는 걸 이루어줄 것인가’ ‘내 성공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소록도로 가는 길에 수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 해야 할 일의 목록. ‘전염돼서 나도 병에 걸리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 기저귀를 갈 때 냄새가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귀찮음. 이런 것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 그랬다.

지난 1일 오후 3시 제5병동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얼굴에 검은 반점이 수두룩한 할머니가 먹으라고 준 드링크제와 귤을 먹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하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이를 본 같은 방을 쓰는 자원봉사자가 한 마디 던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음식을 주시면 그 자리에서 먹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더러워서 안 먹는 줄 알고 싫어하세요.”

잠시 후 70대 할아버지가 옆에 앉아 TV를 보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살짝 걸터앉았다. “너무 아파요”라면서 뭉툭한 손을 내미는 할아버지의 손을 일회용 장갑을 낀 채 잡아드렸다. 청송교도소에 있는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60대 어머니는 참 애처로워 보였다. 봉사자가 대신 써줬다는 편지엔 애타는 모정이 담겨 있었다.

‘아들아 보고 싶다. 왜 답장이 없니. 네 소식만 기다린다.’

그녀는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보물단지처럼 여긴다. 할머니와 친한 봉사자가 아들의 편지 중 하나를 보여주려고 할머니의 침대맡에 갈무리해 뒀던 편지 한 통을 살짝 꺼냈다.

가만히 들춰보는 사이, 의식도 희미한 것 같던 할머니가 그 편지를 애타게 찾았다. 다음날 오전, 30분 정도 늦게 병실에 도착한 나를 본 어느 할머니가 멀리에서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다. 눈도 안 보이고 정신도 없는 것 같던 할머니가 나를 찾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은 했어? 애도 있어?” 세 살 된 딸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돈은 잘 벌어? 아이를 키우려면 돈을 잘 벌어야 할 텐데….”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할머니들이 되레 나를 걱정했다. 어떤 할머니는 부침개와 초코파이를 내밀었다.

떠나오던 날 새벽, 이른 아침을 드신 할머니가 멀찍이 서 있는 나를 불렀다. “어여 아침 먹고 와.”

나는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없었다. “네, 아침 먹고 올게요.”

비록 짧은 봉사 활동이었지만 소중한 교훈을 배웠다. 편견과 욕심덩어리인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고 친절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분들이 존경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재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