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긴급출동 SOS 24’ 내레이터 성우 정남씨 “녹음하다 슬픈 사연에 툭하면 눈물”
입력 2010-12-15 18:00
“인터뷰하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도넛 전문점에서 만난 성우 정남(41)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프로그램을 위해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PD와 스태프들이에요. 저는 대본을 읽을 뿐이지만 그분들은 욕을 먹고, 도망쳐야 하고, 심지어 더러운 데 빠지는 일도 겪어야 하니까요.”
정씨는 매주 금요일 밤 9시55분에 방송되는 SBS TV ‘긴급출동 SOS 24’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긴박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는 ‘힘든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인터뷰 석상에 나오는 것을 수차례 고사했다.
눈물을 참지 못하다
정씨에겐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모 없는 아이들, 또는 학대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 마음이 찢어지곤 했다. “알코올중독자, 지체장애인, 몸이 좋지 않은 할머니가 키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특히 마음이 많이 아파요. 그런 아이들이 비행청소년으로 자라나지 않게 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녹음하다 눈물을 흘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생각해보세요. 수면제에 중독된 어머니 때문에 힘들게 사는 아이, 부모의 언어폭력 때문에 고통 속에 사는 아이 이야기. 눈물 없이 전하기 쉽지 않더군요.”
그나마 요즘은 좀 나아졌다. 지난해 2월 그가 처음 방송에 참여했을 땐 녹음 때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잔잔한 음악까지 깔리면 더 눈물이 났죠. 코맹맹이 소리내기 싫어서 음악 꺼달라고 한 적도 많았어요. 화면을 보지 않은 채 대본만 보고 녹음하기도 했고요.”
그는 녹음을 마친 뒤 자신의 목소리가 입혀 나오는 본 방송을 보지 못한다.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되면 몰라도 찾아서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궁금했다. 보통 자신이 참여해 만든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더 나은 전달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솔직히 녹음을 할 때마다 사회에 어두운 면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돼 우울해져요. 마음이 또 한번 무거워지는 게 두렵다고 할까요. 제가 전한 사람들의 슬픈 사연, 못 보겠더라고요.”
보람을 느끼다
그가 프로그램 말미에 주로 끼워 넣는 대사가 있다. “개선이 필요합니다.” 정부, 사회, 국민이 나서 하루빨리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정씨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한번 방송을 봤다. 그 부분을 듣자 인터뷰 전엔 몰랐던 그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방송이 나갔고 정부 관계자들도 접했으니 고쳐지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실망했던 적이 참 많아요. 비슷한 문제가 참 많은 사람에게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아동 학대 피해자나 노예처럼 당하는 사람의 얘기가 계속 반복되거든요.”
이 프로그램은 사건 당사자를 1년 후에 다시 방문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전하기도 한다. 애프터서비스다. 상황이 호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씨는 긍정적인 후일담을 전할 때 목에서 절로 힘이 난다고 했다. “수많은 사연을 접하기 때문에 이전 이야기를 잊고 살곤 하죠. 1년이 지난 뒤 당시 그 사람이 좋게 변한 모습을 보면 그때의 기억도 나고 너무 기쁩니다. ‘우리 프로그램이 의미가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죠.”
그는 바람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편견이 하나씩 바뀌는 것이다. “‘10년간 돼지농장 노예생활’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면 ‘장애인이고 바보인데 저렇게 일시키면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장애인이든, 지능이 좀 떨어지든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아직 편견이 작용하고 있어요.”
봉사에 나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히트를 쳤던 모 카드사 TV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히딩크,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이 목소리가 바로 정씨의 목소리다. 이름과 얼굴보다 목소리로 유명한 그는 원래 간호사였다.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한 뒤 병원에서 3년 동안 간호사 생활을 했다. “간호사는 봉사정신이 투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어려서부터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직업, 성우를 택한 것 역시 그의 마음 가운데 박혀 있던 봉사정신 때문이었다.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 일 하라고 제가 성우가 된 것 같습니다. 돈 버는 것을 떠나 제 목에서 나오는 소리로 봉사하고 싶거든요.”
그는 성우 활동 초기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서울 상일동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다른 성우들과 함께 ‘소리잡지’를 만든다. “한 달에 한 번 시중에 나오는 잡지 4개에 나온 이야기를 성우들이 모여 녹음을 하고 그것을 전국의 시각장애인에게 보냅니다.”
앞이 보이는 사람만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정씨는 좋은 목소리를 달란트로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기뻐했다.
그가 하는 봉사는 이 뿐만이 아니다. 맹학교 고3들이 모의고사를 볼 수 있도록 문제를 읽어주기도 한다. 맹학교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모의고사를 보는 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녹음을 하는 것이다. “일반 학생들은 문제 풀다 지문 보고 다시 풀곤 하죠. 그러나 맹학교 아이들은 한번 듣고 그 내용을 전부 머리에 넣어야 해요. 아이들이 동일한 시간에 시험을 푸는 것은 불공평해요. 맹인 학생들에게 시간을 좀 더 준다든지 하는 변화가 필요하죠.”
성우라는 자신의 꿈을 이룬 뒤 너무나 즐겁게 일을 해 왔다는 정씨.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힘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꿈꿨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신웅수 대학생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