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중국 이주여성 ‘강 언니’의 한국 살이
입력 2010-12-15 18:49
약국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참으로 추워 보입니다.
편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채 녹지 않고 얼어붙어 운동신경이 둔한 저는 살살 기어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 아직 재개발이 안 되어 예스러운 기와를 올린 집들이 올망졸망하고 낮은 담 아래로 작은 골목이 고불고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응달진 골목길은 가뜩이나 울퉁불퉁한 바닥에 얼음까지 살짝 얼어 걷기가 많이 불편합니다. 간간히 해가 들어 녹은 곳을 찾아 아장아장 아기처럼 그렇게 걸어 다니고 있지요. 걷기조차 만만치 않은 길을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의 바퀴소리가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자그마한 골목을 가득 메우는 소리는 여러 가지 음식을 배달하는 아저씨들의 오토바이 소리랍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미아리 사람들. 이들이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집에서 해먹든 배달을 해먹든 말입니다.
간단하고 편하게 식사를 해결하길 원하는 미아리 사람에게 음식 배달하는 오토바이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요.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오토바이 사이로 동그란 양철 쟁반을 머리에 이고 가는 배달 아주머니의 모습도 종종 거리에 비칩니다.
큰 쟁반 위에 갖가지 반찬 그릇을 담아 머리에 이고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뜨거운 탕을 담은 오지그릇이라도 일라 치면 아주머니들의 목이 눌리게 되는 모습 또한 안쓰러운 광경입니다.
한 아주머니가 갈비탕 그릇 세 개를 얹은 쟁반과 함께 약국 앞에서 나동그라진 일이 생겼습니다. 약국 뒷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일하시는 중국 동포 아주머니가 넘어지면서 깍두기와 반찬이 골목 앞에 쏟아져 난장판이 되었지요. 얼른 나가서 그분을 일으켜드리고 살펴보니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었습니다.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식당 주인은 조심하지 큰일 날 뻔했다고 걱정하였습니다. 넘어졌던 아주머니가 제게 뭐라고 인사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주인아줌마가 답답하여 이야기를 하셨지요. 조선족이 아니고 한족이라서 우리말을 많이 못한다고 이야기를 거들었습니다. 대개의 중국 동포들처럼 그 한족 아주머니도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식당에서 일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비밀교회를 다녀 봤다는 그 아주머니를 강 언니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척척 써내려가고 암송도 열심히 하였지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밝아지고 환해졌습니다.
동네에서 교회 식구를 만나게 되면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인사하는 언니는 겨울 햇살처럼 따스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언니 신랑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 일을 할 수가 없고 동네사람과 어울려 술 마시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할라치면 언니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빨라졌습니다. 식당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언니는 약국에 들러 술 깨는 약을 꼭 챙겨 사갔습니다.
가끔 언니의 안부가 궁금하여 그 식당에 점심을 시키곤 하였지요. 음식 쟁반을 받치는 언니의 자세가 이젠 많이 안정돼 보여 마음이 놓였습니다. 언니의 높고 낮은 중국식 발성이 우리말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그런 발성과 발음을 교정해 주곤 하였으나 우리말 익히기는 오랜 중국식 발성으로 인해 어려운 일이었답니다. 함께 살고 일하는 사람과의 소통이 어려워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고, 남편과의 관계 또한 편하지 않았습니다. 부부싸움을 심하게 해 얼굴과 온 몸 여기저기 멍이 생기고 통증으로 걷기조차 힘들어도 식당을 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 주인이 강 언니가 출근을 안했다고 끌탕하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습니다. 걱정된 저는 강 언니 집을 방문했고요.
낡은 양철대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니 술병과 그릇이 방구석에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등을 구부려 누워있는 언니가 보였습니다. 겨우 눈을 뜬 언니는 어찌 왔냐며 오히려 저를 걱정하였답니다. 언니가 옷 입고 나오기를 기다려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한데 흉기로 위협당한 언니의 몸이 너무 엉망이어서 진료하는 의사도 혀를 끌끌 차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로 언니의 거처를 옮긴 뒤에 이혼소송을 밟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찌 해야 하나 조금은 암담하였지요.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니 이런 어려움에 처한 이주여성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풀어갈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언니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하나씩 배워 갔으며 얼굴빛도 환해졌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