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무궁화호 기관사 조용성씨 “굿바이! 추억열차”
입력 2010-12-15 18:59
15일 16시10분 청량리발 1823 열차는 조용성 기관사가 모는 마지막 경춘선 남춘천행 무궁화호다. 기관차에 달린 객차 6량과 발전차 1량이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 붙잡는 것도 아닌데. “양호!” “청량리 나오세요. 1823호.” 조 기관사가 말하자 기기판 위에 부착된 ‘컨트롤 헤드’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1823호 출발.” 그의 나이 마흔다섯. 기관 조수(부기관사)로 6년, 기관사로 10년.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기차가 경춘선 무궁화호였다. 2000년 여름. 여름으로 기억한다. 초보운전. 1단부터 8단까지 기어를 넣고 속도를 조절하는 정도의 단순 조작이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모든 건 조용성의 책임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객차엔 떠들썩한 청춘들이 가득이다. 138톤. 이런 기관차엔 부딪히기만 해도 사망이다.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성리에서 청평 가는 길. 청춘을 태운 열차는 푸른 강가를 따라 매끄럽게 달렸다.
조씨의 초년 시절 얘기를 듣던 부기관사 김호정(33)씨가 가만히 창 밖을 내다봤다. “경춘선이 좋죠.” 그는 내년부터 지하철 전동차를 몰아야 한다.
경춘선은 기관사들에게도 낭만철로다.
“우리도 좀 서운하죠. 경춘선이 우리나라 모든 철도 라인에서 손꼽히는 예쁜 라인이거든요. 지금 바뀌는 구간은 거의 터널이고. 운치라곤 없죠. 앞으로 경춘선을 경치 생각하고 타면 안 되고요. 빠르고 깨끗하고 편리한 건 있겠지만 경치라든가 여유, 그런 건 많이 없어지겠죠. 때론 도시락도 까먹고 그랬는데 하하.”
요즘 열차는 뭔가 느낌이 덜하다. 손맛이랄까 그런 것도 떨어진다.
비둘기호>통일호>무궁화호>새마을호>KTX. 베테랑 기관사의 선호는 의외였다. 느릿느릿 가면서 역이란 역엔 죄다 정차하던 비둘기호(2000년 11월 폐지)가 좋았단다. 통일호(2004년 폐지)도 KTX가 들어서면서 사라졌고,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만 남았는데 그 둘의 운명도 알 길이 없다. 오는 21일부터 경춘선에도 무궁화호 대신 복선전철이 달린다.
“지하철처럼 승객끼리 마주 보고 앉는 비둘기호 좋았잖아요? 무궁화호 새마을호도 재밌는데. 점점 사라지는 추세니까. 디젤 기관차가 전동차로 바뀌고 있거든요.”
매연을 내뿜는 디젤 기관차는 환경론자들에겐 밉상이다. 허나 전시에는 디젤 기관차가 군용 물자 운반의 유일한 버팀목이다. “비상용으로만 남겨 놓겠죠?”
(부기관사 호정씨에게) “구배가 있데. 힘차게 올라가 달래.”
열차 운행에 있어 난코스는 오르막이다. 일찌감치 속도를 내지 않으면 기하(其下) 7량을 거둬들이지 못한다. 스피드가 가해지니 소음이 귀를 막았다. “귀마개 하실래요?”
조씨는 큰 사고도 경험했다. 94년 철도공사에 입사해 6개월 만에 대형 탈선 사고가 났다. 덕소에서 구리 방면(중앙선)으로 밤 12시 야간열차 편에 올라오는데 뒤에 화차들이 탈선하면서 차가 뒤집히고 있었다. “아이쿠 하나님. 진짜 이 소리밖에 안 나오던데요.” 20시간 만에 현장은 수습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 뒤로 기도 안 하고는 차에 올라탈 수 없었고, 기도 안 하고는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는 조씨다.
3년 전에는 경춘선에서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바위에 열차가 부딪혔다. 한참을 치우고 천천히 차를 몰아가는데 얼마 안 가 흙이 선로로 흘러 내려오는 게 보였다. 산사태가 난 거였다. 열차는 멈춘다고 바로 서지 않는다. 500미터도 더 간다. 만약 바위에 부딪히지 않아 원래 속도대로 달렸다면 100% 탈선이었다. 비를 쫄딱 맞으면서 선로를 덮은 흙을 치웠다. 그해 조씨는 재해예방 사장 표창을 받았다.
사실 기관사는 조씨가 꿈꿨던 직업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음악 공부를 해서 뮤지션이 되고 싶었는데, 집안에서 가장이고 먹고 사는 문제 얽히다 보니까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그 다음엔 전문대 정보통신과를 나와서, 그것도 형편 때문에 중퇴였지만요. 엔지니어가 될까 생각했죠.”
늘 판잣집에 살았다. 그는 3남1녀 중 장남이었고 때론 아버지를 대신한 가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1학년 내내 등록금을 한 번도 내지 못해 진학 사정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교회 선배의 누나가 밀린 등록금을 다 내주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건설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던 해 중동으로 떠났고, 5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군대에 다녀오고 직장 두 군데를 다녔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94년 한국통신 신입사원 공채 시험을 봤다. 떨어졌다. 결혼을 약속한 예비신부(지금의 아내)의 어머니는 그를 마뜩지 않아했다. 그해 겨울, 방황하던 그에게 서울지하철공사에 근무하던 교회 후배가 오려온 신문을 건넸다. 철도공사의 채용 공고였다. 철도공사는 5월에 채용을 마쳤지만 적성검사 탈락자가 많아 12월 추가로 모집 공고를 낸 것이었다. 차량정비, 전기정보통신, 기관조사…. 기관조사만 기능직 9급이었고 나머지는 10급이었다. “기왕 볼 거 9급을 보라 하더라고요. 기관조사가 뭐 하는지도 모르고.”
성남시립도서관에서 20일 공부했다.
“붙고 나서도 다닐지 말지 마음을 못 정했어요. 4주 부기관사 교육 받고 한 달인가 있으니 발령이 나더라고요. 발령 받고 다니다 보니 2010년이네요.” 마흔까지 방황했다.
더 좋은 직업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술과 담배는 유일한 낙이었다.
“만날 불평만 했죠. 기름 이십 리터가 오천 원 할 때 그걸 기름 안 넣고 동기들 만나서 술을 홀랑 먹었네. 집에 갔더니 냉방이더라고요.” 아내는 그를 타박했고, 세 딸도 아빠를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에 드러누워 쉬고 있던 그의 뒤통수를 누가 ‘탁’하고 때렸다. “너 지금 뭐하냐.” 생생한 음성이 들렸다. 꿈인가? 눈을 뜨고 있으니 꿈은 아닐 터였다. 벌떡 일어났다. 그날 저녁 그는 서울 대학로 재즈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3개월 과정에 75만원이었다.
그는 이제 베이시스트다.
지난 13일 백석대 콘서바토리 졸업 연주를 마친 그는 내년 2월 정식 학사로 학위를 받는다. 베이스를 전공하면서 술 담배를 끊었고, 방황도 끝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하루 3∼4시간 자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이렇게 하실 거면 열차나 열심히 모세요”라는 젊은 교수의 질책은 그를 독한 연습벌레로 만들었다. 4년 평점은 4.5 만점에 4.06. 두 번 장학금을 받았다.
“뭔가 절실해진 거예요. 제 꿈이 찬양단을 만들어 해외 선교하는 거였거든요. 교회 찬양단장도 하긴 했지만…. 집사람은 반주자이고, 저도 악기를 다루니까 음악으로 선교하자, 그랬지요.”
얼마 전엔 신학대학원 시험까지 봤다. “찬양 사역이라는 게 악기만 다룬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영성이 뒷받침돼야 해요. 음악 먼저 배운 거고. 근데 떨어졌어요.”(웃음)
직장 동료들 사이에선 이미 ‘목사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교회 담임목사님은 그의 합격을 철썩같이 믿고 계신다고 했다.
내년에 다시 신대원 시험에 도전하겠다는 조씨. 여유가 생기면서 소홀했던 일도 하나둘 챙기기 시작했다. 직장 신우회장(청량리), 교회(성남중앙교회) 찬양단 베이시스트이자 직분자(안수집사)로의 역할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중이다.
긴 방황의 터널을 지나니 꿈이 보였고, 꿈을 찾으니 길이 보였다. 열차가 터널을 통과하듯.
“여기 보내신 건 하나님 뜻이고, 하나님이 주신 직장인데 너 무슨 생각 하냐.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오십까진 열심히 살아야죠.”
“1823 확인.”
1823 열차는 17시55분 남춘천역에 도착 예정이다. 열차 운전의 묘미를 물었다.
“뭐랄까 기다리는거요? 인생이랑 똑같아요. 올라갈 때 힘들게 가지만 내려갈 때 쉽게 가고. 철도는 급하게 해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처음에 움직여도 속도 날 때까지 기다려야 되고, 어느 역에 섰다가도 신호가 나기를 기다려야 되고, 다른 열차가 급한 상황이면 먼저 가게 하고 내가 기다려야 하고. 처음에는 그걸 못 참아서 성질 다 버렸죠. 지나보니까, 아 기다리면 되는 걸 그걸 못 기다려가지고. 기다리면 다 끝나는 일인 걸요.”
기다림의 미학. 그 미학을 즐기고 싶다면 경춘선 무궁화호에 오를 일이다. 하루 열아홉 번 운행하는 경춘선 무궁화호의 마지막 열차는 22일 22시03분에 청량리에서 떠난다.
■ 공지
경춘선 전철 개통을 앞두고 12월20일자로 구 경춘선 폐선 및 무궁화호 운영종료됨을 알려드립니다. 마지막 열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궁화호 1837 청량리(22:03)->남춘천(23:43) 무궁화호 1838 남춘천(21:00)->청량리(22:49)’
글 이경선 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