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은 무엇인가
입력 2010-12-15 17:30
(23) 성경 원어는 영감에 찬 詩
언어는 화석(化石)의 시(詩)라는 말이 있다. 언어는 단단히 굳어버린 싸늘한 돌이지만 그것을 꾸준히 연구하면 영감에 찬 시가 되고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것이 쓰인 원어의 형성 과정과 의미에 대해 면밀히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고대 특정 국가의 언어를 문화와 어법이 전혀 다른 현대인의 시각에서 번역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해석하는 ‘아가페’라는 단어는 성경에 쓰이기 이전에는 세속적인 사랑이나 불륜적인 애정 등을 나타낼 때 빈번히 사용되었다. 70인역은 암논이나 다말, 삼손의 이야기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 기자가 순수하고 거룩한 사랑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아가페는 소위 ‘거듭난(renati)’ 새 단어가 되었다.
2. 신약성경에서 죄를 의미하는 헬라어 ‘하말티아’는 원래 창이 표적을 빗나가거나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일을 그르칠 때 사용되는 단어였다.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전 1:22)는 말이 있듯이 본래 헬라인들은 형체가 있고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형이하학)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 관념적인 것(형이상학)까지도 모든 것을 학문적인 개념으로 규정하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 바울이 죄 및 율법과의 투쟁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부르짖은 고통스런 갈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3. 예나 지금이나 계약을 맺는 당사자들은 서로 증서를 써서 주고받는다. 신약시대의 문서는 주로 파피루스에 매연과 고무를 섞어 만든 잉크로 기록되었다. 이 문서의 내용들은 헝겊에 물을 적셔서 문지르면 말끔히 지워졌다(엑살레이페인). 계약증서를 폐기하려면 또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키아제인’, 곧 ×(헬라어 문자 ‘키’)표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들은 그대로 남겨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누구든지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엑살레이페인’이란 단어는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골 2:14)로 번역되고 있다. 사탄 마귀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증서를 썼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에 흘리신 죄를 적신 후 꺾으신 뼈로 우리 죄가 적힌 증서의 내용들을 다 지우시고 제해 버리셨다(엑살레이페인). 만일 ×(키아제인)표를 하셨다면 마귀는 계속 우리의 죄목을 들여다보면서 고소하려고 했을 것이다.
4.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최초로 행하신 가나의 포도주 이적기사가 소개되고 있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고 대답하셨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어떤 사람이 이 구절을 읽다가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르는 불효막심한 종교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박차고 나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여자여’로 번역된 헬라어 ‘구나이’는 로마 황제가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불렀을 때 사용한 최고의 존칭어였다.
지금 성경 원어(히브리어, 헬라어)는 화석처럼 굳어져버린 사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본래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면 영혼을 더욱 감동시키는 영감의 시와 찬미, 신령한 노래가 될 수 있다.
고영민 총장<백석문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