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필드’로 탈바꿈하는 킬링필드… 프놈펜의 교도소 앞 ‘330 도로’ 캄보디아 연합사역 중심지로 변신

입력 2010-12-15 17:33


1975년부터 79년까지 1만4000여명이 들어가 단 7명만 살아나온 건물. 고문과 학살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내 캄보디아에 ‘킬링필드’라는 오명을 붙인 건물. 생각 없이 들어간 관광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곳. 캄보디아 프놈펜의 ‘툴슬랭 제노사이드 박물관’이다. 그 박물관 정문 건너에 ‘330 도로’가 뻗어 있다. 이 길은 지금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 연합사역의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킬링필드’의 상징 앞에 ‘리빙필드’의 포석을 깔겠다는 포부들이다.

◇프놈펜의 ‘종로5가’=툴슬랭 박물관 내 4개 건물 중 수용자 독방으로 쓰였던 C동 2∼4층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수용자 자살을 막는 용도였다고. 철조망 사이로 건너편을 바라보면 유독 우뚝 솟은 건물이 있다. ‘기독교연합봉사관(Phnom Penh Ecumenical Diakonia Centre)’이라는 이름의 이 5층 건물은 92년부터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선교를 해 온 한아봉사회(이사장 김영태·사무총장 서경기 목사)가 2007년 세웠다.

건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캄보디아 내 기독교 연합사역을 돕는 역할이다. 4개의 세미나룸은 현지 교회와 NGO 등이 청소년 여성 인권 지도력개발 등 교육 장소로 사용하고, 400석 규모의 예배당은 주일마다 국제교회(ICF)가 예배를 드리는데 38개국 300여명의 선교사와 NGO 활동가들이 모인다.

또 하나는 캄보디아 내 성서 배포를 돕는 역할이다. 1층에는 캄보디아성서공회 성서배포센터가 들어와 있다. 임대료는 연간 1달러(미화 기준). 사실상 무상 대여다. 성서공회는 곧 이 거리에 자체 건물을 세울 계획이다. 건축위원으로 참여 중인 한아봉사회 송준섭 선교사는 “새 건물 1층에 ‘평화박물관’을 마련, 여기를 생명과 평화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현지인과 교회의 자활을 돕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우선 여성들에게 퀼트 기술을 가르치고 판로를 개척해 주는 제작실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 말레이시아 기독단체가 세운 자활사업센터도 있어 한아봉사회는 앞으로 이 거리를 프놈펜의 ‘공정무역 허브’로 만들겠다는 꿈도 꾸고 있다. 이밖에 이미 ‘330 도로’에는 한아봉사회가 현지인 정보기술 교육을 위해 97년 세워 지금은 다른 단체가 운영 중인 ‘프놈펜 기술학교’도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개발=한아봉사회는 이 건물 건축 전에도 캄보디아에서 여러 사업을 펼쳐 왔다. 5개 지역에서 진행 중인 마을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일회성 지원보다는 현지인 스스로 개척하도록 장기간 지원하는 방향이다. 그 중 프놈펜 북쪽 30㎞ 거리의 롱웽 마을을 찾아가 봤다.

차로 1시간 반쯤 달려 거의 도착했을 때 길 양쪽 농토를 가리키며 한아봉사회 이성욱 선교사는 “우기에는 전부 수평선이 될 정도로 물에 잠긴다”고 했다. 99년 주민들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에 급히 들어가 보니 주민들은 유일하게 물 밖에 나온 언덕에 모여 소금만 먹고 있었다고.

이후 10여년에 걸쳐 개발이 진행됐다. 집을 물에 잠기지 않게 높여 짓고, 20여 채를 신축했다. 어린이들을 위해 매일 죽을 끓여 먹이고, 문자교실을 열고, 저수지와 우물을 팠다. 선교센터, 어린이집 겸 예배당, 교사, 놀이터도 마련했다. 소작료를 못 내는 주민들을 위해서는 인근 농토 10㏊를 구입해 제일 가난한 사람으로 하여금 농사를 짓도록 했다. 송 선교사는 “당장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돕는 데 주력했다”면서 “차차 주민들이 기독교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얼마 전 자체 예배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프놈펜=글·사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