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허영호, 하늘을 날다
입력 2010-12-15 17:31
한국랭킹 4위. 1986년생으로 2001년 입단한 허영호 8단은 낯선 이름이다. 입단 이후 꾸준한 성적을 냈지만 눈에 띄는 기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2006년 신인왕전에서 원성진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7년 SK가스배 준우승과 마스터즈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고 2008년엔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폭발적인 성적은 아니지만 허영호 8단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성장했다. 그리고 2010년 드디어 그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삼성화재배, BC카드배, LG배, 춘란배 등 세계대회라는 세계대회 본선은 모두 올라갔다. 요즘 중국이 강세를 보이지만 한국기사들보다는 중국기사들에게 더 강한 면모도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7일 생애 첫 세계대회 결승전을 맞이했다.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우승상금 2억원) 결승 상대는 중국랭킹 3위 구리 9단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중국랭킹 1위를 고수하던 구리 9단은 최근 자국대회와 아시안게임의 패배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워낙 큰 승부의 경험이 많은 세계적인 기사라 부담되는 상대였다. 중국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펼쳐진 1국은 엎치락뒤치락 마지막까지 미세한 승부였지만 결국 구리 9단의 2집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9일 펼쳐진 결승 2국에서는 깔끔한 불계승을 거뒀다. 이제 승부는 마지막 한판만을 남겨놓았다. 한국에서는 이번 결승전을 응원하기 위해 박정상 9단과 김지석 7단이 중국까지 동행해 주었다. 시합이 없는 날은 함께 상대에 대한 연구를 하며 포석에 대한 전략을 도와주었다. 한국의 바둑 팬들과 동료들 모두 그의 우승을 기대하고 있기에 더욱 어깨가 무거운 승부였다.
지난 10일 결승 최종국이 펼쳐졌다. 삼성화재배 준결승에만 3번 올랐던 구리 9단에게도 이번 우승은 간절했다. ‘큰 승부에서 적은 상대가 아니다. 나 자신이 적이 된다.’ 마지막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다. 침착함으로 후반에 갈수록 강한 허영호 8단은 초반에 무너지고 말았다.
첫 세계대회 도전기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 삼성화재배는 허영호 8단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결승전을 마친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돌아와 그날 저녁 한국바둑리그 시합에서 승리를 거두고는 다음날 다시 춘란배를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