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해야 할 일…’ 회고록 낸 강경식 前 경제부총리 “외환위기 기록, 미루던 숙제 마친 느낌”

입력 2010-12-14 18:59


“지난 10년간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경제총수로서 근신하며 지냈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숙제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는 것 같은 꺼림칙함을 떨치지 못해 겪은 일들과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내놨다.”

강경식(사진) 전 경제부총리가 14일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강 전 부총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부총리를 맡아 외환위기 대응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책에는 61년 당시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재무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거쳐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로서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외환위기가 터진 97년 경제부총리를 맡아 한때 외환위기 책임론으로 힘들어하다 최소한 법정에서는 ‘국가부도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벗은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외환위기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면 으레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만든다”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일이 없으며 물론 ‘IMF 백서’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9·11테러는 물론 2008년 금융위기가 지나간 뒤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태의 원인과 공과를 샅샅이 파헤쳤고, 태국도 외환위기 이후 ‘누쿨 보고서’를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를 보인 것과 상반된다는 것이다.

강 전 부총리는 우리나라의 경우 “학자들이나 개인연구소 차원의 보고서는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을 밝히고 수습대책과 재발방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보고서는 없다”며 “한심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도공포증’에 관한 일화도 소개했다. 삼미특수강, 진로, 한보의 부도를 잇달아 겪으면서 부도공포증에 시달린 김 대통령이 업무보고 때마다 부도를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 강 전 부총리는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부도내기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며 “부도를 내지 말라는 당부는 재경원이나 금융기관에 할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자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부도는 내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 관리는 책상머리가 아닌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것을 가려서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며 경쟁 탈락자의 ‘패자부활’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등 사회안전망 구축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전 부총리는 1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