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할머니의 추억
입력 2010-12-14 17:46
할머니∼ 하고 불러보면 아직도 가슴이 찡합니다. 할머니는 서른셋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딸 셋을 기르며, 아흔일곱 살의 나이로 길고 긴 고독한 삶을 마치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애지중지 업어 키운 손녀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기 싫으면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가 제가 아파서 학교에 못 온다고 선생님께 말해주셨습니다. 중학교 시절엔 바쁜 어머니 대신 가을 운동회에 나가 일흔의 나이로 달리기를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너무 오래 우리 곁에 살아계셔서 그 소중함도 모르는 채 세월만 흘러, 할머니는 오늘처럼 추운 겨울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행히도 미국 뉴욕에 살다가 서울에 다니러 왔던 중,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시던 손녀딸인 제가 임종을 지키게 됐던 것, 그것도 할머니와 저의 깊은 인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몇 해 전 영화 ‘집으로’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지요.
조부모를 살해한 손자의 뉴스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조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손자였다는데, 어머니와 조부모의 불화,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와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조부모를 살해했다는 믿기지 않는 뉴스에 경악합니다.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 나쁘게 변해가는 걸까요?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부모 살해 사건이 기억납니다.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이기붕의 큰아들 이강석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총으로 쏘고 자신도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삶을 부지할 명목이 없는 가족사의 비극으로 남아있을 뿐, 요즘 같은 패륜아의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 시절엔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몸을 쓰지 못하거나 치매에 걸린 부모를 효도관광 시켜 준답시고 제주도에 데려가 버리고 돌아오는 21세기 고려장은 뜬소문이 아니라 슬픈 현실입니다. 버려진 부모가 자식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니 이보다 슬픈 장면이 또 있을까요?
인간의 모든 행동은 대부분 유전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유전자가 곧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행동 인자는 일곱 살 이전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잔인한 사람은 이미 어릴 적에 잔인한 어린이로 자란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환경이 불우해서, 배가 고파서 작은 도둑이 큰 도둑이 돼 버린 불행한 사람의 삶도 있을 겁니다. 우리들의 삶이 매일매일의 작은 노력으로 이뤄지듯 개과천선하는 사람이 없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 못하겠지요.
맑은 겨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마치 거울 같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제 마음을 꺼내다 저 맑은 하늘 거울에 비춰봅니다. 맑고 바르고 씩씩하게-.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의 교훈이 아니었을까 싶은 이 따분한 단어들이 실은 우리들 삶의 엑기스임을 새삼 이 나이에 깨닫습니다.
황주리(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