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12-14 17:53


(23) 십자가의 연습

십자가에서 죽고 사는 연습은 예배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예배의 예식 안에 있는 세례와 성찬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십자가의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세례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두 종류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고백한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롬 6:10).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죽는 죽음과 평생 죽는 매일 죽음이 있다. 세례는 이 두 죽음을 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으로 형상화한다. 물로 들어갈 때 먼저 옷을 벗는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물로 들어간다. 히브리 개념으로 바다는 죽음을 의미한다. 초대교회 교부 키릴이 말했다. “예수님은 베헤모트라는 용이 물속에 사는데 그곳에 내려가셔서 용의 세력을 깨뜨리셨다.” 세례는 단순히 우리 몸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 새 옷을 입는다. 그리고 성찬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받는다.

세례는 죽음으로 시작해서 생명으로 마친다.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감으로써 죽고, 물에서 나와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산다. 골로새서 2장 12절의 말씀과 같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세례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사는 십자가의 연습이라면 성찬도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으로 내가 생명을 얻는 십자가의 연습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복음서에 예수님의 식사가 나온다. 그 식사 때마다 예수님이 보여준 네 가지 순서가 있다.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들에게 주시다”(take, thanks, break, give). 오병이어 사건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게 하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시매”(마 14:19). 이 순서는 4000명을 먹일 때도, 최후의 만찬 때도, 엠마오에서의 식사 때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몸을 take 가지고, thanks 하나님께 감사한 후, break 떼어, give 우리에게 주셨다. 그는 먼저 생명을 가지셨다. 우리가 받을 생명은 그에게서 나왔다. 그 외 다른 존재는 생명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유일한 생명의 소유자다. 그는 그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래서 늘 감사하셨다. 그런데 그는 그 생명을 홀로 가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나눠주셨다.

그가 그 생명을 우리에게 나눠 주실 때 취하신 방법은 “떼어주셨다.” 떼어주셨다는 말은 자기를 희생하여 우리에게 주셨다는 뜻이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갈 2:20) 것이다. 떼어주셨다는 말의 또 하나의 의미는 우리가 받은 생명과 그리스도가 가진 생명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생명을 받지 않았다. 그리스도 자신과 동일한 생명을 받았다. 그는 우리에게 그 생명을 “주셨다.” 캐논 반스톤이 ‘Love’s Endeavour, Love’s Expense’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는 남겨 두거나 감춰 두는 것 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 세례와 성찬을 통해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다시 산 생명을 연습하고 감사하고 축하한다.

이윤재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