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르포] ‘걷는 길’ 대안은… 중앙정부가 통합관리 ‘국가 탐방로’ 도입을

입력 2010-12-14 17:32


우리 국민은 고도성장의 그늘 속에서 속도전에 매몰돼 걷는 길이나 걸을 권리에 무심했다. 다른 나라는 국가 차원의 장거리 트레일을 조성하고 운영한 지 수십년이 지났다. 이런 사실도 우리에게는 최근에야 알려졌다.

북한산국립공원 둘레길 조성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1946년부터 장거리전원보도와 연안자연보도망 등 걸어서만 갈 수 있는 보도(footpath)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49년에는 ‘국립공원 및 전원지역 접근법’을 제정해 ‘공중이 통행하는 권리를 지닌 길’을 의미하는 공도(公道·Right of way) 개념을 명확히 하고 확대했다. 미국은 68년 국립탐방로제도(NTS)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국가휴양, 국가풍치, 국가유적 트레일의 3개 유형별로 국립탐방로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70년, 대만은 99년부터 각각 장거리자연보도와 국가보도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기획한 환경운동가 윤정준씨는 “일찍이 사유지 재산권에 우선하는 개념의 보행권을 확립한 영국이 걷는 길의 제도적 인프라가 가장 앞서 있고 시스템은 프랑스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 영국을 모방해 장거리자연보도 조성에 나선 일본에는 현재 9개 장거리자연보도의 총 연장이 2만5900㎞에 이르고, 이용자는 연간 6060여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는 걷는 길 붐이 뒤늦게 찾아 왔다. 지리산 둘레길(산림청), 올레(제주도), 영남대로(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북한산둘레길(국립공원관리공단), 오륙도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의 해파랑길(문화체육관광부) 등 걷는 길이 앞 다퉈 조성됐다.

도보여행의 장점은 무엇일까. 자연과의 접촉, 건강증진, 도시를 떠나고 싶은 욕구 충족, 지역경제 활성화 등이 거론된다. 게다가 좋은 경치와 자연을 접하면서 각박한 경쟁을 통해 겨냥한 목표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상대적 관점과 느긋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환경운동가 윤씨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걷는 길이 매우 적다”면서 “다만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관광개발 수단으로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빚어지는 일관성 없는 중구난방 식 도보 개설과 중복 투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통합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전국 단위의 국가탐방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벨기에는 비행 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시켜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듯 청소년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심성 교육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