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르포] 날 좋을땐 수백m 장사진… 소음·쓰레기 탓 코스 변경도
입력 2010-12-14 17:31
북한산 둘레길이 지난 8일로 개통 100일이 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8일까지 155만여명이 북한산 둘레길을 다녀간 것으로 집계했다. 북한산 둘레길은 정상 정복 위주의 산행 인파를 산 아래로 분산시키고 샛길 산행과 자연 훼손을 막는다는 취지로 조성됐다.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지만 소음, 쓰레기 민원, 사유지 이익과의 충돌 등 논란도 낳았다. 그래도 둘레꾼과 등산객 사이에서 긍정적 평가가 많은 편이다.
◇넘치는 이용 욕구=지난 9일 오후 1시30분. 첫눈이 쌓인 북한산 정릉탐방지원센터에서 둘레길 운영단 소속 자연환경안내원 임의락(27)씨를 만났다. 임씨와 함께 둘레길 4개 구간을 걸어 둘레길 동쪽 출발점인 우이령길 입구까지 갔다. 주중인데다 전날 밤 눈이 내려 인적이 드물었다. 늦가을까지만 해도 주말에 3만∼4만명씩 몰려들던 인파는 겨울 들어 한 풀 꺾였다.
정릉주차장에서 동쪽으로 북한산생태숲 앞까지의 솔샘길 구간(2.1㎞)은 일반 차도와 주택가를 많이 지난다. 임씨는 “걷다가 어디서든 중단하고 내려갈 수 있어 노약자들이 다니기에 좋다”고 말했다. 사찰 주변 샛길과 정릉초등학교 뒷길 등 마을 안길이 많다.
북한산 둘레길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이곳뿐 아니라 전체 둘레길에서 샛길이 44.7%, 마을 안길은 20.5%나 차지한다. 도로 내 보도와 도로가 각각 8.9%와 2.3%인 반면 신설노선은 5.6%, 정규탐방(기존등산)로는 5.4%였다.
곧 흰구름길 구간(4.1㎞)에 들어섰다. 임씨는 “이 구간은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전망이 좋은데다 적당한 경사도를 갖추고 있어 탐방객에게 많이 추천한다”고 말했다. 물이 많아 이조시대 궁녀들이 빨래하러 오곤 했다던 ‘빨래골공원’을 지나자마자 구름전망대에 도착했다. 높이 10m의 목제 탑을 올라가니 사방으로 북한산 인수봉과 만경대, 도봉산 전체, 수락산, 불암산, 천마산, 유명산, 검단산이 차례차례 눈에 들어왔다. 백운대만 인수봉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임씨는 “지난가을 주말에는 한참동안 줄을 서서 올라갔다”며 “특히 날씨 좋은 날은 수백m씩 장사진을 이룬다”고 말했다.
◇훼손과 민원의 현장=이준 열사 묘소 입구까지의 흰구름길 구간과 솔샘길 구간을 합친 6.2㎞는 북한산에서 가장 훼손이 심한 곳으로 지적됐다.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폐쇄대상 샛길이 11.4㎞에 이르고, 복원대상 훼손지 면적도 약 30㎡로 가장 넓다. 임씨는 “샛길을 차단한 목재펜스를 넘어가거나 심지어 뜯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둘레길 전체(예정) 길이가 63.2㎞인데 둘레길 부근에서만 복원이 필요한 샛길이 62.1㎞로 거의 같다.
이준 열사 묘소 입구에서 솔밭근린공원 상단까지의 순례길 구간(2.3㎞)과 우이령길 입구까지의 소나무숲길 구간(2.9㎞)은 조용하고 평탄하다. 노약자도 즐겨 찾는다. 그러나 곳곳에 사유지와 주택가를 통과하기 때문에 민원이 많은 구간이다. 특히 솔밭근린공원 바로 옆의 코리아솔밭빌리지는 주말마다 둘레꾼들의 소음과 음주 후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임씨는 “민원이 많아 둘레길 운영단 직원들이 주말마다 피켓을 들고 서서 탐방객을 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 시설팀 김준섭 계장은 “공원경계 안에는 행정력이 미치지만 바깥에서는 지자체의 협조를 구하고 계도 안내판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준 열사 묘소 입구 직전의 통일교육원 앞길은 당초 멀리 마을을 돌아가게 돼 있었으나 소음과 쓰레기 민원 때문에 통일교육원 바로 앞을 지나는 것으로 변경됐다.
◇사유지의 공유와 이익충돌=솔밭근린공원을 지나 손병희 선생 묘소로 가다보면 개발제한구역인 사유지를 지난다. 임씨는 “토지 소유주가 땅 일부를 둘레길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대가로 방치된 땅을 정비하고 일부를 텃밭으로 일구어 줬다”고 말했다. 둘레길 서쪽 내시묘역길 구간(효자동 공설묘지∼방패교육대)에 있는 수목원을 운영하는 효자기업은 사유지를 둘레길로 흔쾌히 내놨다. 그러나 많은 구간에서 사유지 주인들이 둘레길 통과에 반대해 차도의 보도를 둘레길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도보여행 마니아인 윤모(50)씨는 “둘레길 개통을 단기간에 너무 서둘렀다는 느낌”이라며 “상당 구간이 아스팔트길을 끼고 있어 자연과 명상 속에 몰입하는 분위기가 깨져 버린다”고 말했다.
사유지를 걷는 길로 조성할 경우 매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매입 예산이 부족할 경우 도보의 길목에 상권을 주거나 매년 일정액의 통행료를 지급하는 식의 인센티브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내시묘역길 백화사 앞과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실길 구간의 진관사입구에는 주거지 일부를 간이음식점으로 개조한 곳이 있다.
◇평가와 전망=공단 관계자들은 “주말마다 북한산을 찾는 전문 등산인은 둘레길 개통 이후 북한산 정상과 능선부에 탐방객이 상당히 줄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상지대 유기준 교수는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객의 하방 분산효과는 당초 기대에 못 미치고 둘레길 탐방수요가 너무 커서 새로운 훼손 요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탐방객에게 지역사회가 느끼는 불편과 갈등, 생태계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해 체계적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