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인터뷰] 김종훈 “협상 때려치우고도 싶었지만 국익 위해 참았다”
입력 2010-12-13 21:21
김종훈(58)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일요일 모처럼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아차산을 찾아 2시간 동안 산보를 즐겼다. 모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새벽 2시쯤 집에 돌아와 단잠을 잔 뒤였다. 집으로 찾아온 며느리와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타결 후에도 국회에 보고하느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그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13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난 김 본부장은 “길고 복잡한 미로를 벗어난 느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수차례 협상을 진행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고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국익을 위해 좀 더 생각하고 고심했다”고 말했다. 이제 국회 비준 동의만을 남긴 한·미 FTA의 발효시점에 대해서는 “미국과 시일을 박지는 않았지만 그쪽에서 속도를 내면 우리도 내년 달력은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확신했다. 또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유럽연합(EU) FTA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이번 한·미 FTA로 인해 EU는 가격 경쟁 여건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양국이 서명하고도 3년5개월간 끌었던 한·미 FTA가 최종 타결됐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만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무역이 갖는 중요성에 비춰보면 내년 7월 잠정 발효될 EU와 미국 등 내로라하는 거대시장을 우리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게 됐다고 평가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출범한 이후 세계교역이 확대되면서 경제성장이 있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무역이 늘면서 세계화에 따라 고용이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하나 소개하고 싶은 것은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내놨던 보고서다. 이들 기구는 무역이 성장하면 고용에도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분석하면서 그 좋은 사례로 대한민국을 꼽았다. 이렇듯 거둘 수 있는 효과는 크다고 본다. 이번 협상에서 양보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일본, 중국, 대만 등이 긴장하고 경계심을 갖는다는 보도만 봐도 그만큼 우리나라 이익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재협상에서 자동차시장을 양보하고 돼지고기, 의약품 분야에서 성과를 낸 데 대해 야당에선 3조∼4조원을 내주고 3000억원을 챙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이런 계산은 단세포적인 것이다. 기존 협정문대로 하면 자동차가 매년 10억 달러 이익이 있다고 했는데 이를 4년 연장하니까 4조원가량을 손해 볼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렇게 되면 의약품 역시 당초 매년 1조원씩 손해를 본다고 했는데 3년을 늘렸으니 3조원 이익 본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교역을 하는 이유는 안 할 때보다는 나누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분야는 우선 두 가지 숫자를 놓고 봐야 한다. 미국 내 차 시장이 1300만대 규모인데 여기서 우리나라는 8%를 차지한다.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는 전체 120만대 규모 중 미국이 지난해 6500대를 팔아 0.5%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로 관세도 우리나라는 8%, 미국은 2.5%를 부과한다. 양보를 통해 당분간 미세하게 수출에 지장이 없지는 않더라도 빨리 정착될 것이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입장이기도 하다. 대체로 국내 미국산 자동차가 수천대 정도는 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더라.”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문에 한국산 자동차 관세유예를 2∼3년만 하려했는데 우리 측이 오히려 4년 유예를 들고 나왔다고 보도했고, 국내에선 미국 측이 7년 유예를 주장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미국 측이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를 당초 8∼10년 연장해달라고 요구한 게 맞다. 계속 맞서니 막바지엔 7년까지 주장하더라. 이런 협상 뒷얘기는 말하는 게 어려운데 4년으로 막았다는 것을 잘했다고 말하기도 힘드니 말이다. 북의 연평도 도발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한다. 그러나 협상은 경제 통상 논리로 했다. 미국 내 언론 동향은 연평도 사태로 미국이 더 압박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도 있고 한·미 동맹 중요성 때문에 요구 수준을 낮췄다는 얘기도 있더라. 그러나 어느 쪽도 찬성하지 않는다.”
-미국 측 대표단과 산책 후 담판을 지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언제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예견했나.
“협상은 모든 게 합의돼야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협상도 타결되느냐 결렬되느냐라는 고비를 무수히 넘겼다. 협상 중간에 마이클 포만 백악관 경제보좌관과 협상장인 호텔 인근 조깅 코스를 20분 정도 걸으면서 기탄없이 속마음을 얘기했다. 매우 추웠는데 아마 그때가 협상의 랜딩존(착륙점)을 찾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서로 협상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미국도 이 정도면 물러설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막상 협상 테이블에는 좀 더 많은 것을 갖고 나오더라. 결국 협상 마지막 날인 목요일 저녁(한국 시간 금요일 오전)에야 타결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분야에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도입한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이프가드는 ‘칼집 속의 칼’이다. 집에 칼을 걸어놓고 ‘가지고 있소’라고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칼을 빼면 상대방도 함께 휘두르기 때문에 쉽지 않다.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이다. 미국이 과거 우리나라와의 철강 교역에서 한 번 쓴 적이 있긴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서 분쟁절차를 밟았고 우리나라가 승소해 미국이 철회하기도 했다.”
-농업 부문도 취약한데 이번 재협상 보따리에 돼지고기와 의약품 등의 요구들이 포함된 배경은.
“애초 협상에서도 돼지고기는 2014년 1월 1일부터 관세 철폐라고 날짜가 박혀 있어서 양돈업계가 힘들어했다. 당시 협상 기록으로 보건대 한·칠레 FTA에서 삼겹살의 관세가 철폐되는 시기도 그때라 같은 경쟁여건을 만들려는 미국 측 제안을 수용한 게 아닌가 싶다. 2007년 한·미 FTA 체결 때와 상황이 달라졌으니 3년 미뤄달라고 우리는 요구했지만 도저히 안 된다고 미국이 버텨서 2년으로 합의했다. 또 농업은 우리나라가 취약한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쌀은 제외됐고 고추 마늘 양파 참깨(농업분야 얘기만 하면 줄줄이 나온다고 웃음)의 빗장을 여는 것은 15∼18년으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처음엔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협정 내용을 수정한 계기가 있었나.
“협정문 안 고치겠다고 고집했으면 계속 표류 상태였을 것이다.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 정치적 난관이나 업계의 아우성 때문에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고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서울 G20 정상회의 때였다. 당시에도 미국 측 공식적 제안은 과도하고 무리하다고 판단됐는데 그대로 들어줄 이유도 없으니 대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 가지를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거시적인 측면과 공짜로는 안 되고 우리도 요구하자는 것, 미국이 받는 건 우리도 받는다는 것이었다. 왜 말 바꿨냐고 계속 물어보면 설명이 구차해진다. (웃음)”
-쇠고기 관련 논의는 어떻게 되나.
“우리 정부 입장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재론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2년 전 쇠고기 협상할 때도 우리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는 시기라고 못 박았고 현 시점에서 보면 지금은 아니다. 언제가 될지는 지금으로는 모른다. 미국 업계도 30개월 이하 쇠고기라는 연령 제한을 폐지하자는 입장인데 미국 내 상업적 이익으로 보면 매우 미미하기 때문에 계속 매달리다가는 국내 수출량까지 역풍 맞는 등 소탐대실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한·미 FTA 이후 EU와도 자동차 연비 및 배출가스 완화와 관련해 협상을 한다고 했는데.
“EU하고는 더 논의할 게 별로 없다. 이번 한·미 FTA 추가협상으로 인해 유럽은 오히려 가격 경쟁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에 문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온실가스 기준 완화 부분이 있다. 이건 FTA와는 관계없이 무역에서 부당한 장벽을 없앤다는 점과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점을 찾는 것으로 봐야 한다. EU하고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협의를 해야 한다.”
-대표단을 이끌면서 했던 조언이나 협상의 전략이 있었나.
“쉬운 협상은 없다는 점이었다. 기싸움도 해야 하고 계산도 하고 상대편을 찔러도 봐야 한다. 신사적으로 할 때도 있고 얼굴 붉히며 때려치우자는 식의 과격한 발언들도 나온다. 이럴 때 협상팀에 어려울 수도, 쉬울 수도 있지만 보람된 일이다.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자, 국익을 생각하자고 독려하는 게 내 임무다. (이번 협상에서도)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도 있었지만 사적 감정 등을 국익에 투향시켜서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협상엔 분명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엔 호주, 중국 등과의 FTA가 체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팍팍 잘 되면 좋지 않겠나. 그러나 우리는 농업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현장의 협상자로서 보면 농업 분야가 가장 어렵다. 민감성이 크기 때문에 해외시장 공세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지 문제의식이 있다. 호주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도 고민이다. 결국 농업 분야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식량안보, 환경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경쟁력을 키우고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본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를 만나러 갔을 때 협상 잘못했다고 하면 해병대에 가서 밥이라도 짓겠다고 했다. 그때 심정은.
“사실 밥 짓는 일이 더 어렵다(육군에서 군복무를 한 김 본부장은 밥 지어본 적은 없고 집에서 가끔 라면은 끓인다고 했다). 나이가 50대 후반이고 제 의지가 그렇다는 거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종훈 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을 이끈 통상 분야 협상전문가다. 노무현 정부 때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된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도 장관급으로서는 유일하게 유임됐다. 2006년 5월 한·미 FTA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냈으며 2007년 8월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취임, 3년4개월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끈기와 치밀함, 체력과 언변까지 갖춰 협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승부사 기질과 걸맞게 스포츠 광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출생인 김 본부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74년 제8회 외무고시에 합격, 당시 외무부에 입부했다. 캐나다, 미국 등에서 참사관을 지낸 뒤 외무부 국제경제국, 지역통상국 등을 거쳤으며 2002∼200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영사관 총영사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대사를 맡았다.
대담=이명희 경제부 차장, 정리=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