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서 악역 연기 정보석, “맹목적 성공 좇던 조필연… 그 시절엔 있을 법한 인물”
입력 2010-12-13 19:55
부와 권력을 탐한 대가는 참혹했다. SBS 드라마 ‘자이언트’의 지난 7일 최종회에서 조필연은 악행이 탄로 나면서 정신분열증으로 미쳐가다 끝내는 빌딩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 드라마에서 시대의 악인으로 1년 간 살아온 배우 정보석(48)을 지난 11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났다.
“비참한 최후죠. 다만 자살은 아쉬워요. 끝까지 발악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게 더 조필연답죠. 속편을 한다면 필연이 다시 나타나도 의심스럽지 않을 거예요.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으니까요.(웃음)”
정보석은 조필연을 “맹목적일 뿐 악랄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70∼80년대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는 그는 “그 시대에는 그렇게 사는 분들이 있었다. 옳든 그르든 하라면 했다. 상사에 대한 충성으로 몇천 명의 사람을 죽이면서도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중장년층 시청자들은 조필연에게서 자신이 겪어온 잔인한 군인, 무자비한 아버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찾았다. 그는 “군인이야 남자니까 너무 잘 알고, 자신과 뜻이 다르면 데려다 죽이는 정치인, 권력자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많이 봤다. 내가 겪고 본 사람들을 취합했더니, 조필연이 나왔다”고 말했다.
조필연은 고재춘(윤용현) 앞에서는 믿음직하고 유능한 상사였다.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심복 고재춘과의 관계는 남성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진짜 이런 심복이 있으면 세상 정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죠. 요즘은 부하가 상사와 생각이 같더라도 그렇게까지 따르지는 않죠. 당시는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 그저 상사니까 존경하고 따르는 그런 맹목적인 충성이 가능했죠.”
정신분열증으로 미쳐가는 조필연을 지켜보던 고재춘은 주인의 몰락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자살을 택한다. ‘빵’ 소리와 함께 스러지는 재춘을 바라보던 필연의 눈빛은 시청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자신 외엔 아무 생각을 안 하던 조필연이 재춘이 죽는 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죠. 재춘의 죽음은 필연에게 세상이 멈춰버린 것과 같았을 거예요. 그걸 표현하는 장면에서 ‘내가 진짜 조필연으로 살아왔었구나’라고 느꼈을 정도였죠.”
조필연은 아들 민우(주상욱) 앞에서는 냉혈한이었다. 나약한 민우를 의자로 내리 찍고, 아들에게서 가난한 미주(황정음)를 떼어내려고 협박을 일삼았다.
“70∼80년대 부모들이 자식에게 성공지향적인 가치를 강요해 왔죠.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당시 아버지들의 교육관을 이해했기 때문에 조필연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는 “제 부모님은 딱 70∼80년대 분들이었다.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할 때 부모님한테 피아노 의자로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가 그렇게 겪고 자랐기 때문에 내 자식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필연이 민우를 엄하게 몰아칠 때 개인적으로는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정보석은 ‘자이언트’에서 진정한 승자는 강모라고 했다.
“지명수배자였던 강모가 교도소로 필연을 찾아와 복수를 선언할 때(30회) 강모의 크기는 감당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 이후로 필연이 강모한테 말할 때면 힘이 들어가 있고 기묘한 웃음을 흘리는데 이는 필연이 느끼는 두려움을 감추려는 장치였죠.”
조필연 역을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연기한 정보석은 강모 역을 맡은 이범수와 함께 올해 SBS 연기대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처음 시작 때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주인공을 쓰러뜨리려고 싸우는 사람이니까 일단은 내가 자이언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끝나고서 여기저기서 얘기들이 나오니까 욕심이 나네요.”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