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검찰은 수사로 말한다?

입력 2010-12-13 17:53


검찰이 바람 잘 날 없다. 최근 재수사를 통해 ‘그랜저 검사’를 구속기소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구속하면서 그간 실추된 위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나 했더니 또다시 악재가 터졌다. 검찰 수뇌부의 부적절한 언행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스스로 위상을 추락시킨 게 그것이다. 더욱이 검찰 접대 문화에서 빚어진 ‘스폰서 검사’ 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현직 부장검사의 여검사 성희롱과 검찰 수사관의 성추행 의혹까지 불거졌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지난주 ‘신한금융 내분 사태’ 수사 대상자의 신병처리 방향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건 다름 아닌 김준규 검찰총장이었다. 6일 일부 언론과의 비공식 만찬 자리에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 ‘구속 수사’ 방침을 시사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9일 익명을 요구한 검찰 고위 관계자의 말로 인용돼 보도됐다. 파문이 커지자 엄정 처리를 강조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금융권 이슈로 국민적 이목이 쏠린 사건, 그것도 일선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의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건 검찰 최고 책임자로서 경솔한 처사다.

수뇌부의 돌출 발언 경솔

물론 수사 막판에 신한 측이 신 사장 고소를 취하하고 신 사장은 자진 사퇴키로 하는 등 자체 수습 쪽으로 방향을 틀며 없던 일로 하자는 데 대해 분개했을 수 있다. 검찰과 국민이 우롱당한 셈이니까. “국민 앞에서 난리를 쳐놓고 자기들끼리 합의했다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런 언급을 했다는 보도에서 김 총장의 마음이 읽혀진다. 그렇다고 수사 기밀을 함부로 발설해선 안 될 일이다. 구속 사안으로 판단되면 일선 수사 지휘라인과의 조율을 거쳐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게 정도다.

진행 중인 사건에 관해 외부에 입을 연 건 총장뿐이 아니다.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은 8일 검찰 내부 통신망을 통해 아예 장문의 글을 올렸다.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를 놓고 비판적인 보도가 잇따르는 와중에 한 언론이 사설로 ‘검찰의 무능’을 비판하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언론보도에 대한 소회’라는 제하의 그 글에는 수사 착수 배경과 사건 성격, 수사 결과 요지 등이 담겨 있어 사실상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이나 진배없다.

3개월간 고생하며 수사를 해온 데 대해 성원을 보내지는 못할지언정 질타만 하니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특수수사통으로 ‘강골 검사’인 남 검사장이 ‘살아있는 재벌’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한 내용 중엔 일리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수사 내용을 까발리는 건 상식에도 어긋난다.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수사마저 제멋대로 춤을 춘다.

수사 신뢰성 떨어질 수밖에

수사 기밀에 관해 현직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면 전직 검사는 입을 닫아야 한다. 그게 검찰 조직의 통례다. 지난달 잇단 구설에 오른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행태는 그런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물러난 인물이다. 퇴직 후에는 직무와 관련해 취득한 내용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걸 본인도 잘 알 거다. 그럼에도 내사 종결된 사건의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있으니 직업윤리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검찰은 수사로 말해야 한다”는 게 김 총장의 지론이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말로 수사를 하고 있다. 수사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잇단 추문으로 국민은 지쳐 있기까지 하다. 김 총장이 취임 이후 새로운 검찰상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국민이 느끼기에 변한 것도 별로 없다. 스스로의 치부와 환부를 도려내며 국민을 감동받게 하는 검찰이 보고 싶다. 검찰이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길 바란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