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칸쿤 패러독스

입력 2010-12-13 17:59

제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멕시코 칸쿤은 국제적인 휴양도시다. 여기서 194개국 대표가 모여 온실가스 감축을 놓고 외교전을 벌였다. 결과는 국가별 감축량 설정을 내년 남아공 더반 회의로 넘기는 대신 2020년까지 100억 달러 규모의 녹색기금을 조성키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핵심의제는 놔두고 변죽만 울린 셈이니 절반의 성공으로 보기에도 과하다.

칸쿤 회의는 말이 외교전이지 극심한 눈치싸움의 현장이었다. 가스를 더 내뿜고 돈을 덜 내기 위한 국가이기주의의 각축장. 가스 배출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며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교토의정서와 코펜하겐 합의를 만든 나라들이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입장 차이는 해가 갈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다.

칸쿤 일대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이런 희극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넘쳐났다. 그린피스는 ‘Rescue The Climate’라고 적은 대형풍선을 띄웠고, 350.org 회원들은 물에 반쯤 잠긴 책상에 앉아 해수면 상승의 위기를 경고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종이로 만든 자유의 여신상이 비스듬히 침몰하는 장면도 있었다. 마지막 날, 백사장을 장식한 단어는 ‘HOPE?’였다. 기후변화를 다루는 이 회의에 회의적이라는 메시지다.

유카탄반도의 꼭지에 위치한 칸쿤은 1970년대 이전까지 한적한 어촌이었다. 이곳 카리브해의 바다색깔은 한국 용인에 있는 캐러비안 베이와 다르다. 햇살에 따라 비취에서 코발트까지 천변만화하는 빛의 퍼레이드는 가히 매혹적이다. 산호산맥이 깔려 있어 수중 경관도 뛰어나다. 가까운 유적지 치첸이트사는 쇠망한 마야문명의 흔적이 많다. ‘엘 카스티요’라고 불리는 피라미드는 이집트 것과는 다른 신성성을 띠고 있다. 키 작은 배불뚝이 마야인의 모습에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멕시코 대통령 로페스 포르티요는 칸쿤을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했다. 미국 동부와 가깝다 보니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도 수월했다. 동서 400m에 남북 23㎞에 달하는 해안에는 세계적 호텔 체인이 줄을 섰다. 유명 브랜드가 모인 쇼핑몰과 고급 레스토랑에는 미국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휴가철엔 미국 각지에서 칸쿤행 전세기가 뜬다. 그러니 칸쿤은 미국의 부속도서처럼 느껴지고, 온실가스도 많이 배출한다. 칸쿤은 애초부터 기후회의를 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