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저선량 CT의 딜레마
입력 2010-12-13 17:59
‘저선량(低線量) 컴퓨터 단층 촬영(LDCT)’ 검사가 의료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요즘 국내 각 폐암클리닉과 종합검진센터마다 LDCT 검사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폐암에 걸릴까 봐 염려하는 흡연자들이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 국립암센터(NCI)가 지난달 5일 조기진단 목적의 폐암선별검사로 LDCT를 이용하면 폐암에 의한 사망률을 20.3%나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NCI 연구진은 담배를 하루 한 갑씩 30년, 또는 하루 2갑씩 15년 이상을 피운 경험이 있는 55∼74세 미국인 5만347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2002년부터 LDCT와 흉부X선 촬영 검사를 1년에 한 번씩 받게 한 뒤 지금까지 8년 동안 폐암 발병률과 사망률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LDCT 검사 그룹은 354명이 폐암으로 사망했으나 흉부X선 검사 그룹의 경우 442명이 폐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LDCT가 폐암 조기진단 및 치료 기회를 넓혀 사망률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뜻이다.
LDCT는 방사선 노출량을 일반 CT의 10∼20% 수준으로 낮춘 상태를 가리킨다. 영상 화질이 일반 CT엔 못 미치지만 ‘폐암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데 무리가 없는 데다 검사 전 조영제 주사를 맞지 않아서 간편하고, 방사능 피폭 위험도 낮다는 게 장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 LDCT에 대한 관심 고조는 다소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번 NCI 보고는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린 것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의도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김효림 교수는 “LDCT 검사의 한계를 젖혀 놓더라도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 많은 한국인의 폐 영상은 미국인의 경우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미국의 연구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LDCT 검사를 받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높은 위양성률이다. 위양성률이란 폐암이 아닌 데도 폐암같이 보이는 비율이다. LDCT 검사를 거쳐 폐암이 의심돼 흉강경 또는 개흉 수술까지 실시한 경우 중 18∼28%가 폐암이 아니었다는 보고도 있다.
LDCT는 또한 기관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부위에 생긴 ‘말초성 폐암’(선암, 대세포폐암)은 잘 찾아내지만, 기관지 주변의 ‘중심성 폐암’(편평세포암, 소세포폐암)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폐암은 말초성 폐암이 약 70%, 중심성 폐암이 약 30%다. 중심성 폐암을 확인하려면 검사 자체가 수술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힘든 기관지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
이는 LDCT에 의한 ‘과잉 진단’에 의해 쓸데없는 기관지내시경 검사는 물론 항암제 투약과 수술, 방사선 치료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피해는 경제적 부담과 함께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핀란드 증후군’이란 의학용어가 있다. 핀란드 정부가 실시한 조사결과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핀란드 정부는 40대 초반의 관리직 공무원 1200명을 정기검진과 함께 영양 상태, 운동, 금연, 금주 등 건강생활을 철저히 지키게 한 그룹(A)과 그렇지 않은 그룹(B)으로 나눠 15년간 비교, 관찰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심장혈관 질환, 고혈압, 암, 각종 사망률 등의 모든 항목에서 B그룹이 A그룹보다 좋게 나왔다. 심지어 와병 비관 자살률까지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됐다. 하나는 건강 이상 진단에 따른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트려 화근이 된 경우, 다른 하나는 각종 투약이나 시술에서 오는 부작용이 치료 효과보다 더 큰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폐암 조기진단을 위한 LDCT 검사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폐암은 20년 이상 장기 흡연자, 폐결핵 및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 폐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 등이 고위험군이다. LDCT 검사는 바로 이들에게 1∼2년 주기로 필요한 검사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