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를 배우자
입력 2010-12-13 15:43
[미션라이프]한국교회에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괴리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높다. 정체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듯한 지금의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롤 모델’은 누구인가. 여러 신앙의 선배 가운데 독일의 고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도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신앙의 모델이다.
‘사귐의 기도’의 저자 김영봉(와싱톤한인교회) 목사는 “본회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진력했던 하나의 실례다”면서 “그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제자로 살기 위해 힘썼던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김 목사의 평과 같이 본회퍼 목사는 생전에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균형을 결코 잃지 않았다. ‘행동하는 신학자이자 목사’라는 수식어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았던 그에게 바치는 후세의 헌정사이다.
지난 2006년 본회퍼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다양한 본회퍼 관련 행사들이 열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기는 시들해졌다. 최근 대한기독교서회는 본회퍼 목사의 책들을 번역, 8권으로 묶은 ‘디트리히 본회퍼 선집’을 출간했다. 본회퍼의 삶과 신학을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선집으로 국내에 본회퍼 붐을 다시 한번 지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본회퍼 후예’들은 적지 않다. 고 문익환 목사, 한명숙 전 총리, 이정익 신촌교회 목사, 유석성 서울신대 총장 등 여러 사람들이 본회퍼 목사의 삶을 접한 뒤 ‘충격’을 받고 그의 뒤를 따르기로 작정했다.
1906년 2월4일 독일 브레슬라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본회퍼 목사는 행복한 유년기를 지냈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가이기도 한 그는 1923년 17세에 튀빙겐 대학교에 입학, 21세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4세에 대학교수 자격을 획득한 천재 신학자다. 본회퍼는 2차 세계대전 직전 미국에서 공부했다. 미국의 친구들은 그가 전쟁의 위험을 피해 미국에 남을 것을 강권했다. 특히 유니언 신학교의 라인홀드 니부어는 본회퍼가 미국에 머무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본회퍼는 조국 독일 교회의 앞날과 넘어지는 양떼를 돌보기 위해 2차 대전을 앞두고 귀국을 단행한다. 나치 치하에서 그는 줄기차게 평화를 외쳤으며 신앙 영역과 정치 영역의 일치를 꾀해 목사의 신분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 1943년 체포된 그는 1945년 4월9일 새벽, 39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처럼 죽은 사람이었다.
본회퍼는 39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신앙을 삶 속에서 완전하게 용해함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그가 던진 ‘오늘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누구인가’라는 명제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현대 크리스천들에게도 절절한 주제다.
이번에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온 본회퍼 선집은 독일에서 본회퍼의 책을 독점 출판하고 있는 카이저 출판사의 본회퍼 전집(총 16권) 가운데 학문적인 저서 8권이 번역, 출간된 것이다. ‘성도의 교제’‘행위와 존재’‘창조와 타락’‘그리스도론’‘나를 따르라’‘신도들의 공동생활’‘윤리학’‘저항과 복종’ 등이다. 유석성 서울신대 총장,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강성영 한신대 신학대학원장, 정지련 감리교인천성서신학원 교수, 서울신대의 이신건 오성현 교수 등 본회퍼 전문가들이 번역에 참여했다. 기획, 번역, 편집 등 10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나온 노작(勞作)이다. 서회 측은 “이 선집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한국 교회와 신학계, 성도들에게 새로운 이정표와 신앙의 길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대에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본회퍼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본회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석성 총장은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는 본회퍼의 말을 언급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 오직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땅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고 담대하게 선포한 내용이었다는 설명이다.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 이태형 부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