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입력때 ‘약속 예산’ 누락… 예결위선 시간쫓겨 통과
입력 2010-12-12 18:34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의 사퇴 의사 표명은 ‘예산안 파동’에 따른 책임을 떠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 정책위의장은 그동안 당을 대표해 정부와 내년도 예산 규모, 우선순위 등을 협의해 왔다. 그러나 지난 8일 통과된 새해 예산안에 안상수 대표가 약속했던 불교계 지원 예산이 깎이고, 강원도 동서고속화철도 사업 예산이 누락되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고 정책위의장 사퇴는 문책성 경질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안 대표는 그동안 “당이 약속해온 예산을 누가 칼질했는지 밝혀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고 정책위의장이 직접 예산 칼질을 하지 않았지만, 이 과정을 철저하게 지도·감독하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 정책위의장은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되기 닷새 전인 3일 여의도 모처에서 기획재정부 관계자와 비공개 회동을 갖고 템플스테이 예산 등 당 차원의 중점 예산을 꼼꼼히 챙겼다. 당시 재정부도 증액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예결소위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된 7일 밤 11시부터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예결소위 전체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한 8일 오전 11시까지 약 12시간 사이 문제가 발생했다. 한나라당과 재정부가 야당이 배제된 채 예결소위에서 논의된 예산안 증감액을 고려해 각 항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안 대표가 약속했던 사업에 대한 증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누락된 것이다.
예결소위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예산이 300조를 넘다 보니 입력해야 하는 항목만 수만 가지에 달하고 오차를 수정하다 보면 최소 10시간 넘게 소요된다”며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맡은 지역 관련 예산에 신경 쓰느라 다른 일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고 정책위의장도 당시 본회의장에 들어가 있어 예결소위에서 관련 예산이 누락된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예결소위 위원들이 자기 지역구 예산만 신경 쓰는 사이, 당 차원에서 강조했던 예산은 삭감된 채 넘어가버린 셈”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종구 예결소위 간사는 “너무 시간이 없었고, 당과 예결소위 위원들 서로 조금씩 실수하거나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