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정교해지는 해외탈세… 2년간 추징액만 7000억대
입력 2010-12-12 18:27
제조업체 사주 A씨는 최근 10여년간 해외법인과 거래할 때 매출단가 조작 등을 통해 총 5억 달러의 자금을 스위스 등의 비밀계좌로 빼돌렸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수차례의 자금세탁도 실시했다.
국세청이 소문만 무성했던 기업의 해외비자금을 정조준하고 나서면서 역외탈세 실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등을 설립해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역외 특수회사(SPC)에서 거액을 빌리는 등 수법이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주장이다.
◇정교화·대형화하는 역외탈세=기업 해외탈세의 실체가 본격 드러난 것은 지난 5월부터였다. 국세청은 당시 조세피난처 등에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기업자금을 불법 유출한 혐의가 있는 4개 기업 및 사주를 조사해 6224억원의 탈루소득을 적발했다. 과세액만도 3392억원이었다.
금융업체인 B사는 미국에 설립한 펀드에 투자하는 것처럼 위장해 대규모 자금을 정상적인 투자손실로 부당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했다. 무역업체인 C사는 국내법인이 발행한 주식예탁증서(DR)를 해외유명 금융회사들이 인수하는 것처럼 위장한 뒤 실제로는 홍콩에 차명으로 설립한 SPC가 인수했다.
역외탈세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역외탈세에 따른 추징액은 7019억원으로 한 건당 54억원이었다. 유형별로는 해외 현지법인을 이용한 국외소득 이전이 4386억원으로 절반을 넘었으며 해외투자를 가장한 기업자금 유출이 1592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국제조세협약도 활발…기업들 긴장=국세청이 기업의 해외비자금 및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다짐하면서 내세운 수단들도 예사롭지 않다.
국세청은 이르면 내년 안에 해외정보요원들을 국내 기업이 많이 진출하는 곳에 투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각 대사관 등에 국세청 관계자들이 파견돼 왔지만 세무상담과 과세정보 수집 등 제한된 업무를 처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현동 국세청장이 부임한 뒤 세무범죄 근절 외에 새로운 세원확보 차원에서 해외 역외탈세를 바라보면서 해외업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 청장은 차장 시절에 역외탈세 추적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바 있다.
해외 조세기관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역외탈세 근절에 외국과의 공조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외국과의 조세관련 협약 체결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 8월 미국 국세청과 ‘한·미 동시 범칙조사 약정’을 체결해 양국 모두에 거점을 둔 탈세 혐의자에 대해 동시에 세무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기업으로서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커지는 해외 자산에 대한 과세가 강화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활발하게 해외로 이전되는 자금을 국세청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기업에게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잇따르는 세무조사 속에 해외탈세 방지책이 나온 점도 예사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