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굿바이 코린!

입력 2010-12-12 17:56


코린. 캠퍼스에 함박눈이 내릴 때 캘리포니아에서 온 네가 눈을 보고 떠나게 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 교환학생과의 회화상대 권유를 받았을 때 망설였지만, 지나고 보니 한 학기 동안 1주일에 두 번씩 너와 만난 그 시간이 서투르게나마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영어와 안 친한가를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지. 그러나 오랫동안 감추고 싶은 과거의 충격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음을 스스로 만나고 인정하게 돼 터널을 벗어난 느낌이야.

코린. 십년 전 아이와 둘만의 미국생활은 너무도 힘들었단다. 영문학을 전공한 내가 영어 좀 하는 줄 알았다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어라는 장벽에 크게 당황하고 그때부터 영어가 무서워지고 쓰기 싫어져버렸단다. 필기시험만 잘 보면 높은 점수가 나오는 한국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지.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 같은 영어를 하면 안 된다고 항상 강조한단다.

어릴 적 내 고향에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모여 사는 타운이 있었단다. 난 그곳을 ‘선교사 동산’이라고 불렀어. 월요일마다 헌틀리 선교사님 부인께 ‘굿뉴스 바이블’이라는 영어성경책으로 배우는 모임이 재미있어서 그분이 한국을 떠나실 때까지 참석했단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이셨어. 영어와 서양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된 내게 그곳은 최고의 놀이터였단다. 헌틀리 여사가 구워주신 쿠키는 왜 그리 맛있었는지 ‘먼데이 미팅’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그런 내가 쉬운 영어도 말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계기가 오히려 미국 유학생 신분이었을 때라니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만 아는 비밀이었단다. 그래서 사실 회화 파트너로 동의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단다.

망설이다가 널 맞이한 첫날, 연구실 문 앞에 “웰컴, 코린!”이라고 적어놓으니 깜짝 놀라며 좋아해주어 서로 마음 문이 열렸지. 얼마 전에는 서툰 영어로나마 ‘사랑의 고통’이라는 주제로 말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 이제 영어와 좀 친해진 것 같아. 그날 이후 코린 아가씨는 교수 아줌마를 만날 때마다 포옹하는 걸 보면 가슴으로 들어주었음이 분명해.

‘정 들자 이별’이라고 벌써 교환학생 기간을 마치고 돌아간다니 한없이 아쉽기만 하구나. 아버지와 엄마의 남자친구 사진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함께 여행한 이야기를 하는 네게 문화의 차이를 느꼈지만, 동서양을 떠나 인간은 서로 눈을 맞추며 진실로 대할 때 따스한 기운이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단다.

코린. 나도 너처럼 채식주의자가 되면 자본주의의 많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몸도 가벼워질 수 있을까? 너도 나처럼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메일을 이용한다니 다행이야. 떨어져 있게 되겠지만 온라인으로 깊어지는 우정을 소망한다.

내가 전하는 이 한 마디라도 네가 읽게 되길 기대하며 “Good bye and take care Corrinne!”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