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저축은행 대폭발의 징후

입력 2010-12-12 17:36


찰스 폰지(Charles Ponzi)는 1920년대에 미국에서 두 차례의 대형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금융사기와 동의어가 되는 오명을 남겼다. 처음에는 외국 우표 판매 사업을 내세워 높은 수익을 약속하고 나중에 참여한 투자자의 돈을 먼저 들어온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수법을 쓰다가 파산했다.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와서는 플로리다 부동산 개발을 미끼로 새로운 사기극을 벌이다 또 다시 파산했다. 폰지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우편사업이나 공공성이 강한 주택사업을 내세워 투자자를 유혹했던 것이다.

공익법인과 금융기관이 맡긴 돈까지 삼켜 150년 징역형이 선고된 버나드 메이도프 금융사기도 나스닥증권거래위원장이라는 공적 직함을 이용해 투자를 유인한 사례다. 또 국민 70%가 피해를 입었던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도 정부가 앞장서 투자를 권장해 피해를 키웠다. 정부가 기득권에 휘둘리거나 부실감독을 개선하지 못하면 대형 금융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최근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한 저축은행 부실도 예금자보호제도 악용이 빌미가 됐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에 의하면 은행, 저축은행, 보험사, 종금사 등의 예금은 금융기관 별로 1인당 5000만원을 한도로 원리금이 보장된다. 이는 금융기관이 지급불능에 빠지는 긴급사태에 대비한 예비적 조치인데 저축은행은 이를 광고 전면에 내세워 예금 유인수단으로 삼고 있다.

규모나 건전성 측면에서 우열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예금보호 한도를 적용하다 보니 대형화 유인이 전혀 없다. 동일한 대주주가 동일한 지역에서 상호 가운데 숫자 하나를 첨가한 별개의 저축은행을 운영해 예금보호한도를 곱절로 활용하는 꼼수도 등장했다. 이러다 보니 저축은행 예금은 2009년 한 해 동안에도 22%나 증가돼 73조원으로 급증했다.

저축은행은 높은 예금금리에 맞추기 위해 주택사업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과 같은 고위험 사업에 집중했는데, 주택경기 부진으로 PF대출 연체율은 24%를 넘어섰고 부실금액은 3조9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부실채권으로 인한 영업실적 악화로 105개 저축은행 전체의 경영실적 합계는 적자다.

저축은행 예금보험기금은 바닥났고 다른 금융권 기금에서 3조2000억원이나 빌려 쓰는 가운데 기금 일부를 공동계정으로 운영하려는 땜질식 대책도 등장했다. 적자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금보험료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언 발에 오줌 누기’ 대책도 추가됐다. 저축은행의 평균 예금기간이 대출약정기간보다 짧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금금리가 오르면 손익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설상가상의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급불능 사태가 임박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을 신속히 투입해 추가부실을 막아야 한다. 아울러 저축은행 대형화와 건실화를 유도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도 강구돼야 한다.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을 견딜 수 없는 소형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예금보호한도를 낮추고 예금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대출에 대한 대손위험 평가에 따라 차등보험료를 적용하되 사후에 실제 대손발생액이 당초 보고한 금액을 초과하면 부족 납입액에 대해서는 높은 가산금을 추징함으로써 투명한 재무보고를 유도해야 한다.

예금보호한도와 보험료가 건전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면 경쟁력 없는 저축은행은 대형업체와 통합을 모색하는 등 자발적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다. 예금자보호를 방패로 대책 없이 고금리 예금을 유치하는 것은 폰지 사기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예금주에게는 손실이 귀속되지 않고 사후에 국민 부담으로 떠넘겨지기 때문에 역대 정권마다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 위험이 고조되고 있는 저축은행에 대해 정확한 진단에 의한 긴급수술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