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형 간염’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입력 2010-12-12 17:27
해외여행자를 통해 국내에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E형 간염 바이러스(HEV)가 사실은 오래 전 국내에 뿌리를 내린 토착형 인수공통 전염병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정숙향(사진) 교수는 “국내에서 발견되는 HEV의 경우 해외 유행지역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보다 돼지고기 등 E형 간염 바이러스 오염 음식물 섭취에 의해 감염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12일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E형 간염 진단 및 치료를 받은 환자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16명이다. 이들 중에는 HEV 감염에 의한 급성 간염이 간부전으로 진행, 간이식 수술까지 받은 경우도 있었다. HEV 감염은 그동안 인도, 파키스탄,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과 이집트, 멕시코 등에서만 유행하고, 한국인의 경우 주로 이들 국가 여행 중 HEV에 감염된 음식물을 먹고 급성 E형 간염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 해외여행 중 HEV 감염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는 2004년과 2006년 각각 인도를 다녀 온 2명에 불과했다.
환자들의 나이는 23세부터 48세까지 다양했다. 지역적으로도 수도권 및 경상남도, 전라남도, 제주도 등 거의 전국에 걸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HEV는 본래 돼지, 사슴(노루), 소 등의 동물에서 흔하게 검출되는 바이러스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E형 간염은 HEV에 오염된 식수와 음식물, 특히 충분히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 섭취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국내 E형 간염 환자들의 혈청에서 검출된 HEV의 유전자형을 우리나라 돼지에서 분리한 것과 비교한 결과 염기서열 및 아미노산 서열이 92.9∼99.6%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HEV는 신종 플루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열에 약하다. 정 교수는 덜 익힌 돼지고기 섭취를 피하는 등 음식물을 충분히 끓여 먹으면 HEV 감염을 막을 수 있다”며 “음식물을 조리할 때 사용하는 식칼과 도마도 끓인 물에 소독한 후 사용해야 안전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